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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아버지' 최불암 오늘 마지막 배웅...영원한 안식으로 [이슈플러스]

2026.11.02 오후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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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유다원 앵커, 정진형 앵커
■ 출연 : 하재근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PLUS]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전해 드린 것처럼 오늘 국민 아버지 배우 고 최불암 씨의 발인과 영결식이 거행됐습니다. 고인을 추모하며 눈물 속 마지막 배웅이 이뤄졌는데지금부터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관련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앵커]
오늘 발인이 오전에 비공개로 진행됐고 서울 여의도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장례미사가 진행됐습니다. 일단 염 추기경과의 인연이 궁금해지는데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병자성사를 받았다고요?

[하재근]
그렇습니다. 세상을 떠나시기 9일 전에 병자성사를 염수정 추기경에게 받았고 그리고 염 추기경에게 그 전에 세례도 받았었거든요. 상당히 깊은 인연이 있는 건데 2012년에 소년 수형자 교화 프로그램 캠프가 있었는데 거기에 최불암 씨가 봉사하러 갔던 거예요. 그런데 그 캠프가 천주교가 주도하는 그런 캠프였다고 합니다. 그때 그게 인연이 돼서 염수정 추기경하고 관계를 이어오게 된 것이고. 그리고 최불암 씨가 아내 김민자 씨를 여의도성당으로 매주 일요일마다 데려다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요일마다 어쨌든 성당을 가긴 간 거예요, 그러니까 그전에 신자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래서 염수정 추기경이 최불암 씨한테 매주 오니까 반은 신자다, 그렇게 얘기했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인연이 쌓이면서 결국에는 직접 세례까지 받고 병자성사도 하고 그렇게 된 건데. 세례 받을 당시에 염수정 추기경이 최불암 씨한테 세례명으로 도미니코를 권유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김민자 씨가 도미니카라서 도미니카, 도미니코 부부 세례명 그렇게 맞춰서 권유했는데 최불암 씨가 도미니코 안 하고 프란치스코를 선택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프란치스코가 사회적 약자를 많이 도운 성인이거든요. 그래서 최불암 씨가 약자들을 섬긴다는 의미로 프란치스코를 선택을 했고 그래서 뭐라고 그랬느냐 하면 연기자가 성인은 아니지만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최불암 씨의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나중에 종교에 귀의할 때도 그대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앵커]
말씀해 주셨던 그런 스토리도 있고 초록우산과도 그렇고 뭔가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되면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유지를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장례미사에서 아베 마리아를 부른 팝페라 가수 임형주 씨가 생전에 고인을 이모부라고 불렀다고 하던데 이건 어떤 인연 때문에 그런가요?

[하재근]
최불암, 김민자 씨가 팝페라 이런 걸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임형주 씨의 콘서트도 같이 부부 동반으로 가서 보고 그게 인연이 돼서 굉장히 친해졌다는 거예요. 최불암 씨한테 임형주 씨가 이모부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러면서 최불암 씨가 임형주 씨한테 내가 나중에 죽으면 나를 웃으면서 인사해달라, 나한테.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죽었다고 해서 너무 막 애통해하거나 장례를 너무 큰 일로 치르거나 그러지 말고 담담하게 나를 보내달라, 그렇게 아마 당부한 것 같은데. 최불암 씨가 생전에도 화려한 옷도 안 입고 그러니까 서민들이 화려한 옷 입고 다니면 위화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수수하게 입고 다니고 그랬었는데 아마 장례도 그렇게 조용하게 수수하게 치러달라, 그런 의미로 얘기했던 것 같고 그래서 결국 이번에 장례 비공개로 발인식이 치러졌죠.

[앵커]
그런데 미사에는 보니까 최휘영 문체부 장관이나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도 있었고 배우랑 가수들도 많이 보이더라고요. 김혜수 씨나 신현준 씨도 아까 눈물을 보이는 모습 저희도 봤는데 일단 어떤 인연들이 있었던 건가요?

[하재근]
기본적으로 최불암 씨가 수십 년 동안 한국 연예계에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랑 인연을 맺은 거거든요. 그러면서 배우로서도 인연을 맺었고 나중에 교양프로그램 진행도 했고. 그러면서 정치권에서도 활동을 했고. 동시에 봉사활동 40년 이상 한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 관계 속에서 파생된 수많은 지인들이 있는 거고 그리고 꼭 직접적으로 일을 같이 한 지인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일단 배우 후배들은 다 최불암 씨를 존경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중년 이상 배우들은 수사반장 키드나 전원일기 키드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다 최불암 씨를 어른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고 그렇다 보니까 여러 동료, 후배들이 대거 빈소하고 장례식장을 찾게 된 것이고. 유인촌 전 장관이야 당연히 전원일기 때 아들로 나왔으니까 생전에 최불암 씨한테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거예요. 그런 인연도 있는 것이고. 현 최휘영 문체부 장관 같은 경우에는 최불암 씨가 금관문화훈장을 받는 정도의 그런 비중이 있다 보니까 당연히 현 문체부 장관으로서 빈소를 찾게 된 것 같습니다.

[앵커]
앞서 저희 보도를 해 드리기도 했습니다마는 장례미사를 마친 운구행렬이 고인이 45년 동안 후원을 해 왔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본부를 찾아서 마지막 고별식을 갖는 모습도 보여드리기는 했는데 이 계기도 보게 되면 전원일기 속에서 좋은 아버지를 연기하면서부터라면서요?

[하재근]
전원일기에서 금동이를 입양하는, 시장에서 불쌍하게 있으니까 데려다가 입양한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수많은 국민들이 찬사하니까 그때 최불암 씨가 뭔가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거죠. 왜냐하면 나는 배우로서 대본에 써 있는 대로 연기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나한테 찬사를 보내니까 이거 내가 이대로 있으면 나는 위선자가 되는 것 아니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보통 사람은 그런 생각을 잘 안 하는데 최불암 씨가 워낙 양심, 도덕성 이게 발달이 됐다고 해야 하나요. 그래서 내가 이대로 가만 있으면 안 되고 실제로 내가 실천을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1981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가서 활동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85년부터 전국후원회장이 돼서 그때부터 20년 이상 계속 후원회장으로, 그런데 돈만 내거나 얼굴만 비추고 이름만 빌려주고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모든 행사가 있으면 직접 가서 봉사했다는 거예요. 그 생활을 40년 이상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거기 어린이재단 활동에 굉장한 진정성이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장례도 최불암 씨 정도의 비중이면 배우장이나 영화인장이나 방송인장이나 이렇게 치를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또 마지막 가는 길에도 방송국 들를 수 있거든요, 최불암 씨 정도면. 그런데 방송국으로 가지 않고 어린이재단에 마지막으로 운구행렬이 들르는, 유언에 의해서. 그러한 모습이 나타나서 정말 최불암 씨의 진정성이 마지막까지 나타난 것 같습니다.

[앵커]
깊은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런 대목인 것 같은데요. 67년 동안 연기활동을 이어왔던 고 최불암 씨는 수사반장이나 전원일기, 한국인의 밥상으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고인의 빈소에 정말 많은 인사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관련 영상부터 먼저 보시겠습니다.

[앵커]
보신 것처럼 원로 배우들은 사실 인연이 더 깊을 것 같은데. 배우 김혜자 씨 같은 경우는 최불암 씨와 전원일기에서 무려 20년 넘게 부부로 호흡을 맞춰왔잖아요. 각별함이 더 클 것 같거든요.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도 봤는데 어떻게 보셨습니까?

[하재근]
원로 배우들 같은 경우에는 수십 년 동안 활동을 같이 했던 배우가 세상을 떠난 것이기 때문에 마음속의 빈자리가 너무나 클 것 같습니다. 특히 김혜자 씨는 전원일기를 22년 동안 함께하면서 부부 역할로 나온 거잖아요. 많은 국민들이 최불암, 김혜자 씨를 실제 부부라고 오해할 정도로 그렇게 프로그램 속에서 파트너를 했던 건데. 그 22년 연기생활을 통해서 최불암 씨는 국민아버지가 되고 김혜자 씨는 국민 어머니가 됐던, 그렇게 현실에서도 친분을 두텁게 가져왔고 그런데 이번에 최불암 씨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까 김혜자 씨가 굉장히 마음 아파하고 있는데. 그래도 최불암 씨가 먼저 떠난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데 김혜자 씨라도, 다른 원로 배우들도최대한 오랫동안 우리 곁에 건강하게 계셔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앵커]
이밖에도 아까 보셨던 것처럼 나문희 씨가 안녕히 가세요 하면서 인사하는 장면도 굉장히 먹먹한 장면이었고 또 원로 배우 오지명 씨가 내가 먼저 갔어야 되는데 늦게 가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이런 마음도 전했는데. 이외에도 정치인들도 많이 자리를 한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최불암 씨가 14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잠깐 몸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죠?

[하재근]
그것도 있고, 14대 국회의원으로 당시에 정계에 몸을 담았기 때문이면 일부 원로 정치인이나 아니면 당과 연관된 정치인들이 주로 갈 텐데. 이번에는 그게 아니라 여야 할 것 없이 대거 현역 정치인들이, 현역 정치인들이면 최불암 씨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대거 현역 정치인들이 이번에 빈소를 찾거나 장례식장을 찾은 것은 그만큼 최불암 씨가 정치에 잠깐 몸을 담기도 했지만 그걸 넘어서서 한국의 큰 어른이었다. 굉장히 큰 비중을 국민의 마음 속에서 차지하고 있던 분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회적 예우 차원에서 많은 정치인들이 현장을 찾은 것 같고. 특기할 만한 것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최불암 씨하고 중학교 같은 반 짝꿍이었다 이렇게 얘기해서 이것도 참 신기하다. 학교 시절에 유명한 분하고 같이 다녔던 것 같습니다. 최불암 씨하고 오지명 씨는 또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거든요. 그런 것도 신기한데. 안성기 씨가 조용필 씨랑 중학교 동창인 것도 굉장히 신기한 인연이었는데 그러한 학교 다닐 때의 인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앵커]
그리고 배우 김혜수 씨는 사흘간 빈소에서 유족들을 챙기고 이렇게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신발을 정리한다든가 아니면 고인의 아내 김민자 씨를 챙기거나 이런 모습을 보였거든요.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건가요?

[하재근]
처음에 김혜수 씨가 최불암 씨한테 생전에 받은 메시지 같은 것, 그걸 공개했을 때 사람들이 두 분 사이에 어떤 인연이 있을까 궁금해 했었는데 바로 이게 중년 이상 국민들은 대부분 아실 얘기인데 바로 1987년에 KBS드라마 사모곡이라는 게 있었거든요. 굉장히 유명한 드라마였는데 이 드라마를 통해서 당시에 고등학교 1학년 김혜수 씨가 그전까지 하이틴 책받침 스타였다가 일약 안방극장에 주요 배우로 발돋움한 그런 드라마였는데 여기에 김혜수 씨가 고등학교 1학년으로 사극이거든요, 사극에 출연하면서 상당히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었겠죠. 그럴 때 극중에서 김혜수 씨 어머니로 나온 분이 김민자 씨였던 거예요. 김민자, 김혜수 씨가 1987년에 모녀로 나와서 그때부터 김혜수 씨가 김민자 씨하고 최불암 씨를 실제 부모님처럼 그렇게 모시면서 오랜 세월 인연을 함께 해 왔다는 것이고 그러니까 1987년 사모곡에서 그때 시작된 인연이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오면서 이번 장례식장에서 김혜수 씨가 빈소를 사흘 동안 지키면서 계속 신발도 정리하고 손님도 맞이하고 이러면서 거의 상주처럼 그렇게 활동하게 된 그런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전원일기에서 부자지간으로 호흡을 맞췄던 배우 김용건 씨가 이번에 고인의 마지막 길에 직접 배웅하지는 못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혹시 그 이유가 장남 하정우 씨의 결혼식이 다음 달이기 때문에 조문을 자제한 것 아니냐 이런 의견이 있더라고요. 어떻게 보십니까?

[하재근]
백일섭 씨가 그 이야기를 전했는데 원래 김용건 씨, 이계인 씨, 백일섭 씨하고 최불암 씨 이렇게 해서 넷이 계속해서 자주 모임을 갖는 그런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 빈소와 장례식장을 찾았는데 김용건 씨는 찾지 못한 거예요. 백일섭 씨 이야기로는 김용건 씨 아들인 하정우 씨가 바로 다음 달 12월 13일에 배우 차정원 씨하고 결혼식을 올리기 때문에 결혼식을 앞두고는 장례식장을 찾지 않는 그러한 관습이 있어서 이번에 찾지 못했다, 그렇게 백일섭 씨가 전했거든요. 그랬더니 이제 인터넷에서 악플이 달리고 다음 달에 결혼식인데 뭘 벌써 한 달 전부터 안 간다고 하느냐, 이런 식으로 기사도 나오고 그랬는데.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이 우리나라가 엄청난 고속 성장을 했거든요. 농업 사회에서 첨단 디지털사회로 확확 건너뛴 거예요,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그래서 김용건 씨 이런 분들은 나이가 벌써 80대라서 정신적인 살고 있는 시대가 현재 10대, 20대 디지털 세대하고는 완전히 사고방식이 다를 수 있는 거거든요, 그분들의 관념이. 그러니까 그분들이 어렸을 때 익혔던 관념으로는 집안의 경사를 앞두고는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 게 당연한 게 그분들의 관념일 수 있는 거니까 그걸 가지고 또 지금 20대 네티즌들이 비난하고 이런 것은 너무한 것 같습니다.

[앵커]
후배들에게 최불암 씨는 어떤 선배였는지 그의 따뜻한 인품이 느껴지는 회상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들으셨지만 산 같은 존재였다. 까마득한 후배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 주셨다는 이야기들이었는데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하재근]
말씀하신 대로 후배들이 잘못한 게 있으면 엄격하게 지적을 하고 가르침을 주지만 동시에 상당히 인자하고 후배들을 따뜻하게 이끌어주는 그런 선배였던 것 같습니다. 많은 후배들이 일제히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더 후배들이 최불암 씨를 따르고 존경했던 것 같은데 차인표 씨하고 송승헌 씨가 97년에 시작됐던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 최불암 씨하고 함께했던 거거든요. 이 그대 그리고 나도 당시에 굉장히 화제가 됐던 드라마였는데 여기서 최불암 씨가 연기변신을 확 해서 그 전까지 전원일기에서 이렇게 최불암 씨가 항상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거든요. 이러면서 김 회장 역할을 했었는데. 그대 그리고 나에서는 굉장히 활달하고 힘이 넘치는 캡틴 박으로 나왔거든요. 그래서 대게잡이 어선 선정 역할로 나왔었는데 거기서 막 샌드백도 두드리면서 연기를 해서 완전히 이미지 변신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최불암 씨도 나 이런 캐릭터는 안 해 봐서 힘들 수도 있겠다고 했는데 김정수 작가가, 전원일기 작가였는데 그분이 원래 김정수 작가가 이건 최불암 씨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쓴 거라서 최불암 씨가 안 하시면 이 드라마 접어야 한다고 하니까 결국 최불암 씨가 했는데. 그때 이미지 변신한 게 엄청나게 히트를 쳤거든요. 약간 코믹한 이미지였는데 그게 히트를 치면서 영덕대게도 굉장히 더 유명해지고 그랬던 드라마였는데 그런 드라마를 통해서 최불암 씨의 이미지 변신을 막 하는 연기 열정도 느낄 수 있으면서 97년 IMF 당시에 많은 아버지들이 열패감에 빠지고 힘이 없었을 때 최불암 씨 캡틴박 캐릭터가 우리나라 많은 아버지들한테 힘을 주는 역할도 했었습니다.

[앵커]
최불암 씨의 과거를 보게 되면 1959년에 연극으로 데뷔를 했더라고요. 햄릿이라는 작품으로 데뷔를 했다가 말씀하신 대로 TV 중심으로 활동을 하시다가 2018년부터 다시 연극무대로 복귀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순재 씨도 그렇고 건강문제로 무대를 떠나기 전까지는 연극에 출연을 하셨잖아요. 지금도 원로배우 신구, 박근형 씨 등이 무대에서 자리를 빛내고 있는데 이렇게 대배우들이 연극계로 돌아가는 이유가 있을까요?


[하재근]
원로 대배우들이 대부분 연극계 출신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고 의미도 있는 거고 계속해서 연극 무대에 대한 갈증 같은 게 있는 거죠. 이게 TV 연기, 영화 연기, 이런 거라면 감독한테 종속되거든요. 감독이 컷 하면 연기하다 말고 딱 그쳐야 되고. 그러면서 시청자는 드라마를 볼 때 다 편집돼서 쭉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지만 촬영할 때는 굉장히 난잡하게 촬영하거든요. 이 장면 찍었다 저 장면 찍었다, 이러니까 배우 입장에서는 중구난방으로 그냥 뭔가 영혼이 실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을 수가 있는 겁니다. 반면에 연극은 일단 무대 위에 올라가면 배우가 모든 것을 장악해서 2시간을 책임지는 것이지 연출자가 컷, 다시 이런 거 안 하거든요. 그러니까 배우로서는 내가 진짜 제대로 연기를 해 보겠다고 하면 연극 무대를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고또 하나가 TV 연기는 카메라 앞에서 하는 거잖아요. 연극은 관객 앞에서 하는 거잖아요. 그 관객과의 호흡, 관객한테 기를 받고 이게 또 배우를 하는 보람일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대배우들이 연극이 TV 연기보다 체력 소모가 훨씬 심한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연극에 도전하는 것 같습니다.

[앵커]
마지막까지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셨던 것 같습니다. 고 최불암 씨가 편안히 잠드시길 바라보고요. 오늘 말씀도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하재근 문화평론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구수본 (soob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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