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에서 장교로 10년 동안 근무했고 지금은 중위까지 올랐습니다.
2006년에 탈북한 김정아 씨가 있습니다.
이분이 한국 군대를 한번 꼭 체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래서 그 소원이 이루어져서 한국 군대를 직접 갔다왔다고 합니다.
오늘 국군의 날 맞아서 김정아 씨를 저희가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인터뷰]
오랜만에 뵙습니다.
[앵커]
군대 갔다오셨다고요?
[인터뷰]
네.
[앵커]
오늘 국군의 날이거든요.
저도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입니다.
[인터뷰]
그래요?
[앵커]
왜 군대, 언제 갔다오신 거죠?
[인터뷰]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2박 3일로 갔다 왔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1993년에 입대해서 99년에 제대명령을 받았지만 한 3년 동안 부대 보위대장으로 실제 무기탄약을 다뤘기 때문에 실제 군인이나 다름없었어요.
그리고 오랜만에 갔는데 저는 너무 가슴이 끓었고 너무 벅찼고 내가 한쪽으로는 마음이 짠했습니다.
북한 군에서 어려서 내가 정말 힘들게 복무하던 그때 그 기억 때문에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앵커]
북한에서 근무하셨을 때는 몇 살 때 군대 가신 건가요?
[인터뷰]
18살 때 나갔어요.
[앵커]
거의 25살까지.
[인터뷰]
25살까지.
그리고 27에 시집 가면서 부대에서 완전히 떠났죠.
보위대장으로 있으면서.
[앵커]
군대를 10년 가까이 군대에 계셨었는데 왜 한국 군대에 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나요?
[인터뷰]
제가 방송활동을 하면서 물론 한국 국군에 대해서 요즘 많이 이런 언론기사를 통해서 더군다나 그런 생각을 가졌어요.
대체 어땠기에.
제가 보기에는 북한군에 비해서는 정말 너무나도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첫째로 복무기간이 짧잖아요.
그런데 한국군들은 계속 군 문제가 많이 나오니까 한국군도 꼭 한번 겪어보고 싶다.
그리고 제가 원래 체질이 또 군인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군의 이렇게 좋은 제도에서 이렇게 좋은 사회에서 한번 이 정도의 대우, 인권이라는 대우를 받으면서 군생활을 한번만큼은 겪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많이 가졌어요.
[앵커]
그러면 혹시 기회가 된다면 만약에 군에 와서 근무를 하시라 그러면 본인은 하실 생각이 있는 거군요?
[인터뷰]
저는 할 생각은 있는데 제가 건강이 조금 많이 안 좋습니다.
[앵커]
말이 갑자기 바뀌네요.
[인터뷰]
그런데다 나이가 40대에 들어섰는데 과연 저 같은,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을 어떤 이유로 받아줄 수 있을지 그런 부분이, 정작 받아준다면 고민해 보겠습니다.
[앵커]
자칫하면 지금 어쨌건 우리 군에도 고쳐야 될 부분이 많거든요.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고요.
그러나 그것이 다 별거 아니다, 이런 얘기를 오늘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고칠 것은 고쳐야 되겠지만 외부의 시각으로 봤을 때 전체적으로 평균적으로 어떤가, 이런 것을 저희가 좀 들어보고 싶은 거고요.
물론 2박 3일 계셨으니까 전모를 아실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체험하신 느낌이 있을 것이고 갔다와보니까 가기 전 생각하고는 다른 부분도 있었을 것이고.
전체적으로 총평은 어땠습니까, 갔다와보니까.
[인터뷰]
전체적 총평은 제가 만약 이런 상황에서 군사복무를 다시 하려면 저는 평생 했을 겁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고.
그러니까 저는 왜 북한이 열악한 상황에서 군사복무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처음 부터 호강했던 사람을 다시 그자리에 갖다 놓으면 그런 소리가 안나오겠죠.
그런데 저는 처음 부터 너무나도 열악한 생활에서 군사복무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다시 국군의 생활을 보고 너무나도 느낀 게 많았고 이런 데서 정말 다시 군사복무를 해야 된다.
이런 데서 복무하는 것이 진짜 제대로 된 군에 대한 충성을 느낄 수 있겠구나, 북한군 같은 경우에는 거진 전사 때부터 배운 게 도둑질입니다.
무기 도둑질부터 배웠고.
먼저 배우기 시작했고.
[앵커]
일단 배가 고프니까 먹을 게 없으니까 그렇군요.
[인터뷰]
그렇죠.
먼저 배운 게 도둑질입니다.
그다음에 무기예요.
그러니까 이게 순서가 바뀌었잖아요.
그런데 한국군인들 같은 경우에는 첫째로 내가 제일 놀란 게 뭐냐하면 훈련생들이 신병대대들제가 부대에 갔다 왔습니다.
백마부대.
그 이름도 유명한 백마부대에 가서 저도 마음이 들떴거든요.
그런데 그 백마부대에 갔는데 신병교육대 같은 경우에는 저와 함께 훈련한 군인들이 입대한 지 일주일도 안 된 군인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아기죠.
그런데도 군인들이 자율적으로 훈련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제식훈련 같은 경우 조교들이 이러이러한 동작이 있다.
모범생을 보여주고 이제 자체로 훈련.
이러니까 조교의 구령에 따라서 움직이는 거하고 본인들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군사훈련에 참가하는 그런 의식을 높여주기 위해서 그런 방법을 올해부터 새로 고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방법을 봤을 때 저는 너무 감동 먹었어요.
왜 감동 먹었냐.
우리 북한군 같은 경우에는 지휘관이 없는 훈련, 상상을 못 했어요.
전사들끼리 하라고 시켜봤자 너희 놀 거 아니냐.
시키는 훈련을 하게 되면 사람이 자동적으로 강압적인 이런 생각을 받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자율적으로 이렇게 한다.
여기에도 하나의 보면 군인 한 명 한 명의 인권을 존중해 주는 거잖아요.
[앵커]
잘 되던가요, 그 훈련을?
[인터뷰]
잘하더라고요.
의외로 잘하고 그 훈련생들 중에서 팀장을 하나, 반장을 하나 뽑아서 그 사람이 우리 이번에는 이렇게 이렇게 훈련해 보자 하니까 제대로 나름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군인들 같은 경우에는 제가 그날 간 날이 제식훈련 날이었고 25일날 목요일에는 날씨가 엄청 뜨거웠습니다.
날씨가 뜨거워서 나름 걱정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혈압이 낮거든요.
혈압이 낮고 빈혈이 좀 심해요.
북한 군에서 열악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걱정했는데 그걸 하면서 끝나고야 알았거든요.
내가 더위를 안 먹네.
빈혈이 없네.
제가 지금 한국생활에도 삼복더위 7, 8월 이럴 때 여름옷 입고도 바깥에 햇볕에 잠깐 한 5, 10분만 있으면 빈혈을 바로 느낍니다.
그래서 원래는 병영체험을 제안받은 게 7, 8월이었거든요.
7월 말인가 그때 제안을 받았는데 내가 혈압이 낮아서 제가 가을에 가겠습니다.
이렇게 미뤄서 이번에 간 거거든요.
그런데 일도 안 될 때라 딱 25일날 내가 간 날이 햇빛이 났는데 훈련을 제식훈련 도착해서 한 10시부터 12시 반까지 2시간 반 동안 햇볕에 나가서 훈련했습니다.
하고 들어와서야 내가 느꼈어요.
내가 더위를 안 먹었네.
그다음에 보니까 이 군복 재질이 정말 좋은 거예요.
그렇게 좋은지 몰랐거든요.
그런데다가 땀은 분명 흐르는데 더위를 느낄 수 없는 그런 미묘함이 있었고 군모 자체도 이게 베레모로 되어 있죠.
그런데 베레모왜 이 모자가 시원한지 몰랐어요.
천이 두껍거든요.
그런데 북한군 군모 천에 비해서 그 2배로 얇습니다.
그런데 북한군모는 바로 더위가 느끼고 숨이 턱턱 막혀요.
이게 정수리가 덥기 때문에.
그런데 베레모 같은 경우 통풍이 되어 있더라고요.
통풍 그 기능성이 있어서 정수리가 시원한 거예요.
그러니까 땀이 나도 여기만 땀이 나는 거예요.
그게 참 신기했어요.
그런데 훈련 끝나니까 더 신기한 게 뭐냐하면 군화를 신었는데 군화를 물로 씻으래요.
깜짝 놀랐어요.
군화를 세상에 물로 씻는 게 어디 있냐고.
앞에 보니까 병사들은 수도에다 군화를 통째로 발을 들이미는데 안에 물이 하나도 안 들어가는 거예요.
정말 놀랐어요.
그러니까 북한군에는 군복, 신발, 피복이 정말 열악합니다.
군복 같은 경우에는 2년에 한 번씩밖에 안 주기 때문에 그나마 갈아입을 옷이 없어요.
그런데 병사들 같은 경우 병실에 가보니까 군복이 2벌에 그다음 활동복에, 비옷에.
나는 비옷까지 입는 거 보고 더 놀란 게 우리 군사복무 할 때 비 홀딱 맞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그 군복을 말릴 수가 없어요.
그게 단벌이니까.
그러면 내복을 입고 속 상의라든가 이런 내복을 입고 또 지휘관들이 자기 작업복을 막 빌려주는 경우도 가끔씩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군복이 채 다음 일과 생활 진행할 때까지 군복이 마르지 않으면 젖은 걸 그냥 입어야 돼요.
[앵커]
조금전에 저희가 보여드렸는데 가서 일기처럼 쓰셨더라고요, 메모를.
그래서 그중에 저희가 몇 개 골랐는데 군복, 지금 말씀하신 물로 씻을 수 있다.
깜짝 놀라신 거고요.
내무반에서 TV보는 군인, 운동복 차림으로 실내화로 생활관 활보.
병사들 의지 나약함.
제가 사실 여쭤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인데 우리 군이 어쨌건 북한과는 사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그럴 정도로 장비도 우수하고 여건도 좋고 그런데.
그러면 전력은 어떤 것이냐, 우리 군이.
그 부분하고 연결이 되는 부분이거든요.
지금 어떻게 느끼신 겁니까, 저거를?
[인터뷰]
제가 저걸 어떻게 느꼈냐 하면 포부대에 갔을 때 크게 못 느꼈습니다.
그런데 신병들이다 보니까 군에 입대한 지 이제 5일밖에 안 된 군인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체력 단련시간에, 체력훈련 시간에 병영을 3바퀴를 돈다고 합니다.
뛰기 힘든 사람 나오라고 하니까 바로 나가는데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뛸 수 있는 군인들이었거든요.
그런데 나가더라고요.
사실 나도 나가고 싶었어요.
내가 굳이 거기서 굳이 그렇게까지 뛰면서까지 병영체험을 할 그런 감을 못 느껴서.
[앵커]
몇 명 나가던가요?
그때 손들고.
[인터뷰]
한 10명 미만?
그런데 한 군인은 실제 다리를 깁스를 했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 군 빼놓고 나머지는 다 뛸 수 있다고 보거든요.
[앵커]
아니면 뛰어보다가 못한다고 하든가.
[인터뷰]
내 말이 그 말이에요.
뛰어보다가 힘들면 빠질 수 있는데.
그래서 얘네 안 되겠다.
이래가지고 나보고 아무 소리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나오라는 말도 없는데 같이 뛴다.
이러고서 뛰었습니다.
실제 병영 3바퀴를 뛰는데 마지막 뛰고 나서 나도 혀를 갈아물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내가 그걸 마지막까지 기를 쓰고 뛸 때 중대장이 그 중간에서 굳이 이렇게 안 해도 됩니다.
나오세요.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괜찮다고.
내가 장교 자존심이 있는데 뛰기 시작했는데 나 끝까지 뛴다고.
이래서 끝까지 뛰었어요.
뛰고서는 마지막에 내가 작별인사 하면서 저희 팀 훈련생들한테 물어봤어요.
내가 왜 그때 끝까지 뛴 거 같냐고.
내가 충분히 안 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왜 뛴 거 같냐고.
그러더라고요.
전우애이지 않습니까?
속으로 내가 너희하고 하루밖에 안 지냈는데 여기서 웬 전우애가 여기서 나와.
그래서 내가 그 이야기를 했어요.
전우애가 아니야.
내가 너희한테 딱 하나 보여주고 싶은 거.
북한 군인의 정신을 보여주고 싶었어.
왜, 제식훈련 그거 할 때 내가 잠깐 그런 얘기를 했어요.
북한에서 열병식 하면서 하반신 마비 2번 된 얘기를 했어요.
기억하지 하니까 기억한대요.
나 혈압도 낮고 빈혈도 있고, 하반신 마비2번 왔던 사람이야.
충분히 안 뛰고 뛰다가 도중에 나와 뛸 수도 없는 상황이고.
건강상황이 허락되지 않은 상황인데 왜 뛰었나.
너네한테 북한 여군의 정신만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래서 의지로 뛴 거야.
나도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서 무릎에서 진액이 흐르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막 주저앉고 싶은 느낌.
그 느낌을 나도 분명히 받았거든요.
그런데 내가 왜 뛰었겠어?
그래서 만약 너희 중에 여기에서 나 정말 뛰다가 도중에 나오고 싶었는데 저 여자분이 너무 기를 쓰고 뛰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뛰었다하는 사람 손들라고 했더니 진짜 손 들고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만은 알아둬라.
군 생활은 완벽하게 준비돼서 하는 게 아니라 군인은 첫째도 둘째도 정신이다.
그거만은 알아라.
제가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앵커]
그러면 이거 여쭤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군이 나약하다.
그런 비판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우리가 우수한 것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런데 정신력은 북한군에 비해서 뒤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는 분들도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종합적인 국방력, 전투력으로 봤을 때 보시기에는 어디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인터뷰]
당연히 대한민국이죠.
첫째로 내가 포부대에 갔을 때 포부대 보완상 부분들이 너무 많아가지고 다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간첩반, 포반이라든가 오전, 오후를 다 들어가봤습니다.
병사들하고 다 얘기 나눠보고 그 장비를 실제 내 눈으로 봤을 때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모든 게 다 최신장비.
3분 이내에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그런 장비들.
너무나도 부러웠고 북한군 같은 경우에는 그리고 포반 같은 경우에는 시도 때도 없이 얘네가 시동을 거는 거예요.
시동을.
그런데 북한은 8. 15 훈련소 장갑 기계와 장갑 부대였습니다.
장갑 부대 같은 경우 시동을 걸어본 지 오래됐다고 합니다, 얘네가.
우리 협공작전이기 때문에 전우라든가 작업을 할 때 2대대 작업을 많이 하거든요.
이 얘기를 많이 다뤄봐요.
저희 장교들 같은 경우에는 장갑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우리한테도 잘 안 보여주는 거니까.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장갑 오르고 내리기 맞나.
시동 언제 걸어봤어요?
기름이 없어 시동을 못 건대요.
그런 문제점하고 이 정상적인 관리를 하는 문제점.
대한민국 국군이 그런 전력 문제는 정말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거기에 군인들 의지만 조금만 더 받쳐준다면 실제 자부대에서 복무하는 군인들 같은 경우에는 의지 문제는 크게 논할 문제가 없어요.
그만큼 자기 본인들이 자신감이 넘치고.
그런데 훈련생들 같은 경우에는 조금 차이가 있죠.
아직 단련이 돼야 되니까.
[앵커]
군대 밥은 맛있었나요?
군대밥 여러 끼 드셨겠네요.
가셔서.
[인터뷰]
정말 맛있었습니다.
창피를 무릅쓰고 곱배기로 더 달라고 할 정도로.
제일 신기한 게 우유, 통조림 나눠주고 포부대 갔을 때 영양밥이라는 걸 해 주더라고요.
그거 보고 이 정도로 밥 먹고 군복무를 한다면 괜찮겠구나.
그래서 우리 사회나 언론들이 조금 국방부에 대해서 걱정하는 분들도 많고 최근에 이런 일어나는 사건들이 많기 때문에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일어나는 부분은 전체에서 정말 1%, 몇 퍼센트에 속하고 전반적인 부분에서는 정말 걱정 안 해도 될 거다, 그렇게 생각됩니다.
[앵커]
이 사진을 보니까 진짜 군복이 참 잘어울리시기는 잘 어울리시고 참 여군을 대한민국에서 계속하셨다면 아주 훌륭한 군인이 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혈압도 지금 낮고 나이도 40이 되셨고 그래서 다시 가시기는 어렵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군대에 갔다오셨으니까 한번 힘차게 경례로 국가의 충성을 다짐하는 의미로 한번 거수경례 해 주시겠습니까?
[인터뷰]
백마!
[앵커]
백마, 백마부대 다녀오셨으니까.
저희가 군 얘기를, 국군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 국군의 날이고요.
저희가 군에 대해서 저희 뉴스에서도 많은 비판도 하고 또 감시도 하고 그리고 우려도 합니다마는 기본적으로는 이것이 우리 대한민국 지키고 있는 우리 군에 대한 애정 그리고 감사를 바탕으로 해서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철통같이 지켜주시기를 바라겠고 또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김정아 씨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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