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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있어 행복했다, 나를 꼭 기증해달라"
폐섬유화증을 앓던 제 아버지, 소방관 김봉년 씨가 겨우 펜을 잡고 쓴 마지막 말입니다.
향년 76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글로 유언을 남기신 아버지는 그로부터 1시간 뒤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은 소방관 누구보다 불 끄는 일을 자랑스러워 하던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화마와 싸우길 수십 년, 결국 폐가 딱딱해지는 폐섬유화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원망 한 마디 없으셨죠.
소방관 직업에 자부심이 강했던 아버지는 평소 "남을 돕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30년 간 소방관 생활을 마친 뒤에도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람을 느끼셨던 분이었습니다.
일찌감치 각막과 장기기증 의사도 밝히셨습니다. 그래서 숨을 거두신 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장기를 기증하려 했죠.
하지만... 장기 기증은 뇌사 상태일 때만 가능했습니다. 심장이 멎은 뒤에는 장기 기증을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꼭 기증해달라"던 아버지의 뜻을 어길 수는 없었습니다. 겨우 병원을 통해 찾아낸 곳이 바로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뼈는 기증할 수 있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가족들도 인체 기증은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필요한 인체 조직의 80% 가까이를 수입할 정도로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더군요.
팔·다리 뼈를 기증하신 아버지… 입관할 때 꿰매진 자국을 보고 눈물이 났지만 아버지는 분명 기뻐하고 계실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떠나신 아버지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한컷 디자인 : 이은비
자료 :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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