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27일, H.O.T.는 잠실 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개최했다. 오만여 명의 흰 물결이 잠실 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리더 문희준 씨는 팬들에게 약속했다. "에쵸티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고.
약속을 지키는 데는 무려 17년이 걸렸다. 그 사이 수십만 명의 소녀 팬들은 회사원이, 혹은 누군가의 엄마가 돼 어른의 삶을 살아갔다. 하지만 팬들의 가슴 속에는 늘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던 행복했던 그 시절의 추억이 살아 있었다. 콘서트를 보기 위해 지방에 사는 팬들은 기차표를, 해외에 거주하는 팬들은 비행기 표를 망설임 없이 결제했다.
콘서트장에 온 '특별하고도 평범한' 팬들의 사연을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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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H.O.T. 콘서트에 모인 팬들 "현생 포기하고 왔습니다"]()
◆ 함께해준 그대에게 행복을
광주에 사는 황재훈 씨(34세)는 임신한 아내를 위해 콘서트 티켓을 선물로 준비했다.
재훈 씨는 무한도전 토토가 첫 번째 특집 때 "에쵸티도 하면 좋겠다"는 부인의 커밍아웃(?)으로 아내가 팬이었음을 알았다. 그때 재훈 씨는 부인에게 만약 H.O.T.가 콘서트를 한다면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티켓팅은 녹록지 않았다. 1차 티켓팅에서 실패한 재훈 씨는 매일같이 취소 티켓을 검색하다가 결국 동생 지인의 양도로 기적적으로 티켓을 얻었다. 그야말로 온 가족이 달려들어 얻어 낸 성과였다.
아내는 표를 구했다는 남편의 말에 반신반의하다가 티켓을 받아본 뒤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강타의 오랜 팬인 아내는 13일 오전 상경해 강타가 출연하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뮤지컬을 관람한 뒤 곧바로 콘서트장으로 합류했다. 서울에 온 김에 '두 탕'을 뛰는 것. 남편은 "연애할 때였으면 살짝 질투했겠지만, 이제는 질투가 나는 게 아니라 나도 강타님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재훈 씨는 "13일 그렇게 좋아하는 강타님 온종일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직장생활이랑 육아 스트레스 날려버리고 배 속에 아기와도 좋은 추억 쌓고 오자"며 부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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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설수 없는 별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콘서트 현장에는 해외 팬, 특히 중국 팬들도 대거 공연장을 찾았다. H.O.T.는 한류 1세대 그룹이기도 하다.
그룹 시절 인기를 바탕으로 멤버 장우혁과 강타, 이재원은 중국 드라마 주연을 맡았을 정도다.
중국인 티옌(35세)씨도 H.O.T. 공연을 보기 위해 12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티옌 씨는 웃돈을 얹고 어렵게 콘서트 표를 구했다고 밝혔다. 이번 콘서트에서 좋은 자리는 중국 웨이보에서 수백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프리미엄이 붙었다.
'우혁 오파'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는 티옌 씨는 학생 시절 중국으로 유학왔던 한국인 친구를 통해 H.O.T.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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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온 아름다운 우리 추억을 기억해
서울에 사는 박지윤 씨(33세)는 17년 만에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H.O.T. 콘서트를 위해 자비를 들여 팬클럽 단체복이었던 우비와 풍선을 준비했다.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 당시 산후조리원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는데 17년 전 함께 콘서트에 갔던 친구들과 "곧 콘서트를 할 거 같으니 꼭 같이 가자"는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지윤 씨는 콘서트가 다가오는데 공식굿즈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디자이너인 자신의 특기를 살려 굿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친구들 것만 만들려고 했는데 SNS에 글을 올리니 많은 팬이 굿즈를 요청해 규모가 이렇게 커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윤 씨의 "17년 전처럼 하얀 물결을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에 시작된 공구는 100장에서 300장으로 늘어나 예상치 못한 수익이 생기기도 했다. 이익을 보려고 시작한 게 아니여서 수익금으로 패키지 비닐과 야광 팔찌, 그리고 로고가 찍힌 흰 풍선 500개를 추가로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줬다.
지윤 씨는 남편이 콘서트 예매에서부터 굿즈 공동 구매까지 옆에서 많이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에쵸티를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완벽하게 공감해주지는 못해도 14일에는 남편과 아이, 그리고 반려견까지 함께 주 경기장으로 나와 콘서트장 분위기도 느끼고 사진도 찍고 풍선을 나눠주는 일을 도왔다.
지윤 씨는 17년만의 콘서트 참여 소감에 대해 "표현이 안 될 만큼 벅차다"면서 "3시간 공연으로 17년 기다림의 세월 다 선물 받은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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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흘러내린 눈물만큼 영원히 사랑할 나의 아름다운 학창시절
통영에 사는 김옥경(37세)씨의 남편 박모씨는 아내의 H.O.T.사랑을 장모님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장모님 말에 따르면, 아내는 '지방에 살아 콘서트도 보러 가기 힘든데 버스를 대절해서 공연을 보러가고 방에는 비디오 테이프와 잡지가 가득한 에쵸티의 리더 문희준만을 사랑하던 열혈팬'이었다.
무한도전 토토가를 할 때마다 매번 H.O.T.가 나오길 기대하던 아내는 그들이 방송에 출연한 날,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설레하다가 본 방송을 보면서는 대성통곡을 했단다. "얼마나 좋으면 그러냐"고 묻자 김옥경씨는 "에쵸티는 내 10대 시절의 추억"이라며 다시 푹 빠져있다. 이제는 9살 난 아들과 4살 딸도 H.O.T.의 응원법을 알 정도.
박씨는 "콘서트 표를 구하면 보내주기로 했는데 덜컥 아내가 표를 구했다"면서 '쿨하게' 보내줬다고 한다. 자영업을 하는지라 아이들을 보기 힘들었는데 아내의 '쵸티사랑'을 아는 장모님이 아이들을 맡아준 덕분에 아내는 서울까지 갈 수 있었다.
박씨는 "아내가 영원히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오빠'들로 남아달라"면서 "다음에는 전국투어를 부탁한다. 아내를 통영에서 서울까지 혼자 보내려니 불안하다"며 웃었다.
그러나 박씨가 모르는게 하나 있다. 아내는 H.O.T.가 전국투어를 하면 아마 '전국'을 돌게 될 것이다.
17년만에 열린 콘서트에는 H.O.T.의 히트곡과 각 멤버들의 솔로 활동 곡까지 두루 담겼다. 과거의 영광만 재현하는게 아니라 그들의 역사를 훑고 '2019년'이라는 의미심장한 태그를 남겼다.
그야말로 "우리들의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YTN PLUS 정윤주·최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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