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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UN 위안부 증언...희망 전한 인권운동가

2019.01.29 오후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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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꽃다운 나이 14살에 일제의 위안소로 끌려간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 1992년 처음 피해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인권운동가로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희망을 전했습니다.

김 할머니의 일생을 이경국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나라를 빼앗긴 시기, 딸만 여섯인 집에서 넷째 딸로 태어난 김복동 할머니.

군복 공장으로 간다는 말에 속아 위안소에 가게 된 건 고작 14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일본군의 침략 경로를 따라 중국과 홍콩, 말레이시아로 끌려다니다가 22살 숙녀가 돼서야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김복동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지난 2011년) : 이 세상 태어나서 한 번 활짝 피어보지도 못하고. 조선도 아니요, 일본도 아닌 먼 외국 전쟁터로 끌고 가서….]

66살이던 지난 1992년, 44년간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었던 피해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등 전 세계를 돌며 증언대에 섰습니다.

[김복동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지난 2015년) : (아베는) 모든 것을 개인이, 민간인이 돈벌이 갔다고 하면서 (우리 명예를 훼손한 만큼)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달라.]

병석에 눕기 전까지 매주 일본대사관 앞 수요 집회에 참석해 자리를 지켰고, 지난해 9월, 암 투병 중에도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촉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김복동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지난해) : 위로금 받으려고 이때까지 싸웠나. 위로금이라고 하는 건 천억을 줘도 받을 수가 없다.]

평생 모은 돈을 기부해 재일교포와 분쟁지역 아동, 전쟁 중 성폭력 피해를 본 여성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상처와 흉터가 남은 곳에 희망을 전한 김 할머니, 그 고귀한 삶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겁니다.

[김복동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지난 2011년) : 우리는 해방이 안 됐습니다. 아직. 하루라도 빨리 해결 지어줬으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YTN 이경국[leekk0428@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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