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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출발새아침] 한국사로 보는 100회 전국체육대회

2019.09.25 오전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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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출발새아침] 한국사로 보는 100회 전국체육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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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9년 9월 25일 (수요일)
□ 출연자 :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2만 5천여 명 참가 올림픽 두 배 규모
-일제강점기인 1920년 제1회 전국체육대회 개최
-1920년 전조선야구대회 대인10전, 소인 5전 유료입장, 인기폭발
-한국인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민족, 1951년 전쟁기에도 전국체육대회 개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노영희 변호사(이하 노영희): 일주일 내내 이 시간만 기다린다는 분도 계십니다.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스포츠 뉴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장과 함께 짚어봅니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이하 최동호): 안녕하세요. 뜨거워지는 시간입니다.

◇ 노영희: 오늘의 키워드는 뭡니까?

◆ 최동호: ‘전국체육대회’입니다.

◇ 노영희: 전국체육대회요. 서울에서 열리는 거죠?

◆ 최동호: 예. 이번에 올해 서울에서 열리거든요. 그런데 좀 의미가 있는 대회입니다. 왜냐하면 올해 대회가 제100회째를 맞이해요. 제100회 전국체육대회가 10월 4일부터 10월 10일까지 일주일간 서울에서 열리게 되고요. 잠실주경기장을 비롯한 72개 경기장에서 열리고. 시범종목이 2개가 있걷ㄴ요. 택견하고 보디빌딩이 시범종목인데, 시범종목 2개를 포함해서 모두 47개 종목이 열리게 되고요. 참가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2만5000여 명이거든요. 17개 시도, 해외동포 선수단 18개가 참가하는데, 참고로 올림픽이 어느 정도냐면 1만2000~1만4000여 명 정도, 그러니까 두 배 규모입니다.

◇ 노영희: 올림픽보다 오히려 더 많네요.

◆ 최동호: 이게 무조건 자랑일 수만은 없는데. 일단 규모가 두 배 정도 크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네요.

◇ 노영희: 그렇군요. 그런데 올해가 100회째를 맞이한 해라면 제1회 대회는 일제강점기 때, 1920년 1919년 이때 시작됐다는 거 아니에요?

◆ 최동호: 예. 산술해보면 1920년에 열렸던 대회가 제1회 전국체육대회가 되는 거죠.

◇ 노영희: 그땐 조선체육회가 개최한 전조선야구대회라는 거죠?

◆ 최동호: 맞습니다. 전국체전을 대한체육회가 개최하는데 대한체육회의 전신이 조선체육회고요. 조선체육회가 1920년에 전조선야구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이것을 현재 전국체전의 효시, 기원으로 삼고 있는 거죠. 그런데 엄밀하게 따지면 조선체육회가 1920년에 만들어졌고, 전조선야구대회 열고 다음해에 전조선축구대회 열고, 이게 단일종목 대회를 연 거거든요. 조선체육회 창립 15주년을 맞이해서 1934년에 조선체육회가 드디어 축구, 야구, 정구, 농구, 육상 5개 종목을 한꺼번에 개최하면서 종합대회를 개최했어요. 사실 실질적으로 보면 1934년에 열었던 전조선종합경기대회가 전국체전의 기원이다. 이렇게 보는 게 사실은 맞죠.

◇ 노영희: 그렇군요. 그런데 조선체육회, 이게 대한체육회의 전신이다. 지금 이런 얘기신 거잖아요.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한 기자가 조선체육회 설립을 앞두고 독립을 촉구한다는 취지로 ‘조선의 청년들이 조선의 이름으로 올림픽에 참가하자’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 최동호: 시대적 상황을 조금 더 이해해야 하거든요. 1910년에 우리가 강제합병을 당했죠. 그리고 일제가 조선 식민 경영을 위해서 갖가지 조직을 만들어냅니다. 조선에도 그 당시에 체육인들이 있었고요. 체육활동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일제가 조선체육협회를 만들었는데, 이 조선체육협회는 일본체육협회의 조선지부. 일본을 중심으로 이게 돌아가던 조직이었거든요. 1919년에 3·1운동이 있고 난 뒤에 우리 민족이 교훈을 얻게 되죠. 독립을 위해선 좀 더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민족의 역량을 조직적으로 모아야 한다. 그래서 체육계도 체육회를 만들자. 그래서 조선체육회가 만들어진 거거든요. 조선체육회 창설의 일익을 담당했던 변봉현 선생이 계시는데, 당시에 동아일보 기자였습니다. 이분이 조선체육회 창립을 앞두고 동아일보에다가 바람을 잡죠, 칼럼. 이 칼럼의 제목이 ‘체육기관의 필요를 논함’이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는데. 국한문 혼용체였는데 지금도 읽어보면 가슴이 뜁니다. 그리고 왜 체육회를 만들려고 했는지를 알 수가 있거든요. 일부분을 소개해 드리면,  ‘만국의 국제적 운동경기대회인 올림픽대회는 8월에 벨기에의 수도 브뤠셀에서 개하게 되었다. 국제 올림픽대회! 아! 이는 실로 오인의 무량한 감념과 무한한 감동을 준다. 아! 우리가 왜 이에 참가 못하는고! 권리가 없는 바인가? 아니다. 자기의 있는 권리를 사용치 않음이니 이는 자벽이오 다름 아니오다’ 이게 일부분이거든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 1920년에 벨기에 안트베르펜 올림픽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는 왜 참가 못하는가. 조선의 이름으로 조선의 청년들이 나가서 당당하게 실력을 겨뤄보자라고 촉구하는 바인데, 이 말의 속뜻은 우리도 독립하자. 독립하자라고 대놓고 얘기는 못하니까 우회적으로 이야기한 거죠. 이것이 조선체육회 창립의 근본적인 취지라고 볼 수 있는 거죠.

◇ 노영희: 그러니까 사실 자기 이름으로, 혹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나가서 메달을 따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연결이 돼서 생각해본다면 손기정 선생이 생각나잖아요.

◆ 최동호: 그렇죠. 손기정 선생 일장기를 달고 뛰셨죠. 그런데 이미 그 당시에도 조선의 체육, 젊은 조선의 청년들 중에는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가 있던 운동선수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대한민국이란 국호로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건 1948년 런던 올림픽인데, 이미 1932년 LA 올림픽에 김은배라는 마라토너가 출전했습니다. 6위를 했고요. 권태하라는 마라토너는 9위를 했습니다. 또 항을수라는 복서도 출전했고요. 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손기정 선생이 마라톤에서 금, 남승룡 선생이 마라톤에서 동메달, 금메달 동메달을 동시에 따냈죠.

◇ 노영희: 손기정 선수 이전에도 우리나라 선수들이 사실 아주 훌륭한 기량을 보이는 분들이 많았다는 건데요. 1920년에 야구대회가 있었다, 그러니까 조금 이상해요. 좀 힘든 시기이기도 하고, 또 야구가 우리나라에 원래 있던 스포츠입니까?
 
◆ 최동호: 도입이 된 거죠. 도입이 된 건 우리가 1904년에 한국 야구가 시작됐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영화 ‘YMCA 야구단’ 그런 느낌 그대로 보시면 돼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인기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조선의 일제강점기 때 야구, 축구, 또 복싱 같은 스포츠는 상당한 인기를 모았거든요.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요. 왜냐하면 나라를 잃었잖아요. 나라를 잃었는데 나라 잃은 설움을 일본과 공식적으로 경쟁해서 일본 선수들 두들겨패거나 이기거나, 한을 폭발할 수 있는 게 유일한 게 스포츠였죠. 그러니까 조선의 민중들이 스포츠에 열광한 거였거든요. 1920년에 전조선야구대회가 열렸는데 대단했습니다. 이거 공짜로 보여주지 않았어요. 유료대회였습니다. 그런데 입장권이 대인이 10전, 소인이 5전이었다고 하거든요. 1전은 1/100원입니다. 그때 입장권 판매로만 200원의 수입을 얻었다고 하니까 계산해 보면 총 관중이 2000명이었다는 거죠.

◇ 노영희: 대단하네요.

◆ 최동호: 얼마나 대단했냐면, 1922년 있죠. 전조선야구대회 열리고 2년 있다가 1922년에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이 조선을 방문해서 전조선청년회하고 친선경기를 가졌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그래서 이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했던 당시 이원용이란 분이 비즈니스 감각이 굉장히 뛰어났던 분인데, 메이저리그 초청 올스타팀이 경기 해가지고 엄청난 돈을 벌기도 했죠.

◇ 노영희: 그런데 사실 제가 만약에 이 당시에 스포츠를 했다면 사실 저는 스포츠 되게 못하고 하기도 안 좋아하지만, 했다면 저는 복싱을 했을 것 같아요. 일본 사람들을 마구 두들기는.

◆ 최동호: 1930년대에 조선의 복서가 주먹 ㅏ나 믿고서 일본을 재패했어요. 그리고 미국 프로복싱에 진출했던 선수도 있ᄋᅠᆻ습니다. 

◇ 노영희: 그런데 조선체육회 설립 이후에 일제 탄압을 받아서 친일파가 회장에 올랐다는 이야기도 있다던데요.

◆ 최동호: 조선체육회는 앞서 말씀드렸던 대로 체육운동, 체육활동을 통해서 조선의 독립을 하자라는 취지로 출범했는데, 결국 일제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친일파가 회장에 오르게 되고요. 1938년에 결국 강제로 해산을 당하게 되죠. 그리고 해방 후에 곧바로 재건됐습니다.

◇ 노영희: 그렇군요. 그런데 전국체육대회가 참 저는 오늘 놀랄 만한 소식을 지금 이걸 통해서 많이 배우게 되는데, 한국전쟁 때도 일어났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 최동호: 전쟁 때도 전국체육대회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 노영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전쟁인데?

◆ 최동호: 우리 민족은 제가 보면 스포츠를 참 좋아하고 잘하는 민족이에요. 일제강점기 때도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 땄고요. 45년에 해방되고 난 뒤에 조선체육회가 복구됐거든요. 정부 수립 이전에도 조선체육회는 우리 올림픽에 나가자, 해서 IOC에 먼저 가입을 했어요. 원래 안 되는 일인데 IOC에 가입을 해서요.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잖아요. 1950년은 워낙 상황이 긴박해서 대회를 열지 못했는데 1951년, 광주에서 전국체육대회를 개최합니다. 놀라운 대회였어요.

◇ 노영희: 51년이면 한창 전쟁 때인데.

◆ 최동호: 1951년 전국체육대회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이었습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때 우리가 출전하는 거죠. 전쟁 때였는데. 출전해서 어떻게 됐을까요? 두 명의 선수가 메달을 따냅니다. 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강준호 김성집 선생. 강준호 복싱, 김성집 역도에서 동메달을 따내고요. 1952년, 1953년에도 서울에서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됐습니다, 전쟁 기간인데도.

◇ 노영희: 그렇군요. 그런데 어쨌든 이게 또 역설적으로 전쟁이라 하더라도 이런 게 필요한 것 같긴 하더라고요.

◆ 최동호: 그때 논란이 많았어요. 전쟁인데 무슨 체육대회를 하느냐. 그런데 체육대회를 개최했던 이유는 세계만방에 우리가 굴하지 않고 일상의 생활을 이어가고 자유를 위해서 분투하고 있다는 걸 알리자. 이런 취지였죠.

◇ 노영희: 그렇군요. 그런데 저희가 아주 어렸을 때는요. 전국체육대회가 TV에서 중계도 많이 해주고 엄청난 행사로 사실은 상당히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랬는데 요즘은 관심이 좀 떨어진 것 같아요.

◆ 최동호: 관심 밖의 대회가 돼버렸죠. 이게 1990년대 중반까지도 국가적 행사였거든요. 관심을 모으고 끌었는데 중요한 변화가 생겼죠. 그 당시까지는 스포츠에서 볼거리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다 국내 선수, 국내 팀 간에 경기였는데 우리 선수들이 박찬호 이후로 해외로 막 나가게 되고, 메이저리그 유럽축구를 보다 보니까 이제 전국체육대회는 관심 밖의 대회, 이 정도 수준이구나라고 해서 관심을 받지 못하게 돼버린 거죠.

◇ 노영희: 그렇군요. 그래도 사실은 전국체육대회가 엘리트 운동선수를 발굴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비인기종목 선수들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 꼭 육성하고 잘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 최동호: 결론적으로 그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건데요. 전국체육대회 이번 서울 대회 2만50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한다고 하잖아요. 올림픽의 2배 규모입니다. 이게 자랑일까. 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거든요. 무슨 얘기냐면 뜯어보면 비효율과 낭비의 요소도 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시도에서 번갈아가면서 개최하다 보니까 규모의 경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 참가해서 시도 성적 올리려고 허위로 선수들 등록하고. 이런 것보다는 전국체육대회는 전문 선수 육성하고 발굴하는 대회로 규모를 축소해서 진짜 전문 선수 제외하고 평소에 선수 은퇴했다가 했던 분들은 전국생활체육축전이 따로 있거든요. 생활체육 하시는 분들도 전국대회가 있으니까 이렇게 좀 나눠서 새롭게 전국체육대회가 어떤 대회인가, 성격을 규정해서 알차고 실속 있게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지향하고. 이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봅니다.


◇ 노영희: 그렇군요. 전국체육대회도 새롭게 발전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런 말씀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최동호: 고맙습니다.

◇ 노영희: 지금까지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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