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2년 9월 25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박관찬 첼리스트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시청각 장애 있는 박관찬씨가 첼리스트가 된 사연"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수술이 많은 질환이 무엇인지 짐작하시나요. 통계청 자료를 찾아보니 현재도, 또 십 년 전에도 ‘노년 백내장’ 수술이 단연 1위였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눈에만 이상이 생기는 게 아니고 무릎, 그리고 허리 이곳저곳에서 탈이 납니다. 결국 조금씩 불편한 곳이 생기고 장애를 겪게 되는 것이죠. 단순하게는 안경을 끼는 것도 눈에 장애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정도로는 장애라고 여기지는 않죠. 어쩌면, 우리는 어떤 부분에서 조금씩 다 어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그 어려움을 장애로 여기지는 않기 때문에 ‘장애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장애를 가진 사람’과 ‘장애를 덜 가진 사람’이 존재할 뿐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진행을 맡고 있는 서울시립대학교 이성규 교수입니다. 어쩌다 얇은 종이에 손을 베어도 따갑고, 수영하다 귀에 물이 들어가서 잠깐 먹먹해도 불편한데요. 그럴 때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겪는 분들은 어떨까? ‘이심전심’, ‘인지상정’의 마음 가져봤으면 합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첼로를 연주하는 청년입니다. 그런데 앞을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무척 힘든 어려움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박관찬 씨인데요. 얼마 전에 한 복지 법인에서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공모전이 있었습니다. ‘일상 속의 장애인’이라는 주제로 우리 생활 속에서 만나는 장애를 가진 분들의 이야기를 모집한 거죠. 여기서 대상을 받은 분이 바로 오늘 나오신 박관찬 씨인데요.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쓰셨어요.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박관찬 씨는 시각과 청각, 두 감각이 모두 불편한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복합장애’라고도 하지만, 이 부분은 상당히 독특한 장애라고 새로 인식하기 시작한 영역이죠. 청취자 여러분들께서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분들과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박관찬 씨는 아주 큰 글자를 볼 수 있는 저시력 입니다. 그래서 사전에 질문지를 통해서 인터뷰 내용을 공유했고요. 청취자 여러분께서 듣기에 발음이 아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어서, 저희가 ‘일상 속의 장애인’이라는 인식 개선에 함께 하고자 이런 시간을 마련했다는 점 많이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활동 지원을 도와주는 이주랑 선생님도 함께 자리를 하셨고요. 어서 오세요. 두 분 반갑습니다.
◆ 박관찬 첼리스트(이하 박관찬)>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이성규> 중요한 역할을 해주기 위해서 나오신 이주랑 선생님도 인사 해주시죠.
◐ 이주랑 활동지원사(이하 이주랑)> 네, 안녕하세요. 활동지원사 이주랑 입니다.
◇ 이성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시겠어요?
◆ 박관찬>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박관찬입니다. 저는 진행자 분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눈에는 저시력, 그리고 귀에는 고도난청으로 시각과 청각에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시청각 장애인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이성규> 이주랑 선생님께서 작성해주시는 보조 자료 글자 크기를 보니까 A4 용지 절반 정도 크기의 큰 글씨는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이신 것 같고, 또 아까 말씀하셨듯이 ‘듣는 것은 좀 불가능하다’라고 하셨는데. 이 장애가 언제부터 생겼습니까?
◆ 박관찬> 정확하게는 ‘언제부터’라고 해야 되는지는 모르겠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눈이 먼저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가니까 ‘시신경 위축’이라고 하더라고요. 시신경 위축이 와서 먼저 저시력으로 시각 장애를 가지게 되었고요. 그리고 우리 몸의 신경 구조가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신경 위축이 오면서 청신경에도 자극을 줘 청각장애도 가지게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에는 저도 장애를 거치지 않은 비장애인이었는데, 초등학교에 돌아가면서부터 조금씩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 이성규> 그런데 얼핏 보기에는 박관찬 씨가 장애가 있다는 걸 모르고 오해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 박관찬> 네, 아무래도 겉으로 보면 건강해 보이기 때문에 장애처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저도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갈 때마다, 장애라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겉으로 건강해 보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을 마음껏 하고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장애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일반 학교를 다니셨더라고요. 그리고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대학까지 졸업하시게 됐는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 박관찬>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학교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학교에서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맨 앞자리에 앉아도 칠판의 글씨가 안 보이고. 또 선생님의 말씀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혼자서 책을 보면서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생활을 돌아보니 조금 억울하기도 하고, 아쉬운 생각도 많이 드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큰 글자 도서와 문자 확대 서비스 같은 공부에 필요한 지원을 받았는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그런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고, 또 시청각 장애를 같이 갖고 있으니까 정보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에 ‘어떤 지원을 받아야 되는지’ 이런 부분도 잘 모르고 있어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오직 혼자서 책을 보면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이성규> 대학교에 와서는 지원이 있었지만, 그 전에 없었다. 또, 이번에 밀알복지재단에서 진행한 ‘일상 속의 장애인’이라는 스토리텔링 공모전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써서 수상을 하셨는데, 첼로를 연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첼로를 실제로 연주하시는 거죠?
◆ 박관찬> 네, 실제로 연주합니다.
◇ 이성규> 어떤 계기로 첼로를 연주하게 되었습니까?
◆ 박관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힘든 시간이 정말 많았습니다. 시험 시간을 연장하고, 확대 문제지, 확대 답안지를 받고. 이러한 장애인 편의 제공을 다 받아도 시각과 청각에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저에게 딱 맞는 필요한 제공이 없었기 때문에 힘든 점이 많았어요. 그렇게 힘들 때마다 한 번씩 영화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보게 된 영화가 <굿바이>입니다. 일본 영화인데,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납관사로 일하고 있었어요. ‘납관사’란 사람이 죽으면 이제 그 죽음을 보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굿바이>라는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첼리스트였다가, 나중에는 납관사를 하게 되었어요. 납관사를 하게 되면 시체를 만지게 되고, 다양한 사연으로 죽은 사람들을 접하게 되니까. 아무래도 ‘살아가는 것과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 남자 주인공이 많은 생각과 갈등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남자 주인공의 아내와 고향 친구는 ‘많고 많은 직업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그런 일을 하냐’고 하면서 시체를 만지는 남자 주인공이 손이 ‘불결하다’며 다 그의 곁을 떠나가 버렸어요. 그래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내도 없고, 친구도 없고. 또 자기가 다양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의 시체를 만지게 되니까. 살아가는 것과 죽는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마다 첼로를 연주하는 거예요. 그때는 저도 시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보 접근이 어려우니까. 피아노나 바이올린, 이런 악기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첼로라는 악기가 있다는 것은 그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어요. 첼로가 어떤 소리가 나는지도 모르지만, 남자 주인공이 첼로를 연주할 때 피곤해 보이는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막연하게 ‘나도 시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점이 있으니까. 그럴 때마다 남자 주인공처럼 첼로를 연주하고 싶다.’ 정말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하고 첼로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 이성규> 그렇군요. 배우실 때 쉽지 않았을 텐데, 선생님이 계셨나요?
◆ 박관찬> 당시에 활동 지원해 주시는 분에게 주변에서 첼로를 가르쳐 주실 수 있는 선생님 리스트를 좀 찾아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총 다섯 명의 선생님 리스트를 받았는데,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 연락드리는 선생님은 다 레슨을 거절하셨습니다. 제가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레슨을 하기 어려울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솔직히 마지막 다섯 번째 선생님에게 연락을 드릴 때도 ‘아마 이 선생님도 거절하시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락을 드렸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그 선생님은 “첼로는 마음과 영혼으로 연주하는 악기예요.” 처음에는 조금 힘들 수도 있겠지만, 열심히 잘 해보자고 그렇게 말씀해 주신 덕분에 감사하게도 첼로를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이성규>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오늘은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매우 힘든 상황이지만 씩씩하게 첼로를 연주하는 박관찬 씨와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박관찬 씨, 우리가 평소에는 노래를 듣지만요. 오늘은 박관찬 씨가 첼로로 연주하는 연주곡을 하나 듣고 싶습니다. 어떤 곡을 연주해 주시겠습니까?
◆ 박관찬> 제가 하나의 곡을 마스터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악보가 잘 보이지 않고, 또 어떤 멜로디인지 악보만으로 파악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제가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의 곡을 마스터하기까지 최소 한 달이 넘게 걸립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의 곡을 완전히 마스터 해냈을 때 큰 성취감을 느끼곤 해요. 물론 제가 연주하는 소리를 제가 듣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고 있는 멜로디와 제가 알고 있는 멜로디를 똑같이 잘 맞추어서 연주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하루 일과 중에서 첼로를 연습할 수 있다는 시간. 첼로를 연주할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 그런데 첼로를 연주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어머니가 저에게 “이 곡 한번 연주해봐라”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연주해봐”라고 했을 때, 엄마에게 너무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바로 악보로 찾아서 저만의 방법으로 악보를 만들고, 글자를 크게 쓰고, 계이름을 크게 쓰고, 쉼표 등의 글자를 만들고, 기호를 넣어서. 저만의 방법으로 악보를 만든 다음 정말 악을 쓰면서 열심히 외웠습니다. 그래서 정말 거짓말 안 하고 하루 만에 그 곡을 마스터를 해버렸어요. 엄마가 연주해보라고 했던 곡은 가수 이정옥 님의 <숨어 우는 바람 소리>입니다. 지금도 그 곡을 연주하면 엄마 생각이 나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숨어 우는 바람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 이성규> 박관찬 씨가 첼로로 연주한 <숨어 우는 바람 소리>를 같이 듣고 오셨습니다. 박관찬 선생님의 연주가 실제로 들어보니 상당히 감미롭고 좋은데요. 연습할 때 하루 종일 연습하다보면 방음시설도 필요하실 것 같은데, 집에 방음시설이 잘 되어 있나요? 주변 분들은 또 괜찮다고 양해를 해주시던가요.
◆ 박관찬> 집에 방음이 되어 있는지는 제가 모르죠. 제가 안 들리니까, 제가 연주하는 소리가 얼마큼 크게 들리는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첼로를 배우게 되었을 때는 그냥 첼로의 허리를 잡고, 즐겁게 첼로의 줄을 그을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밤낮 가리지 않고 진짜 열심히 첼로를 연습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제가 외출을 하기 위해서 나서는데, 누가 우리 집 문에 포스트잇을 하나 붙여 놓은 거예요. 뭐라고 적혀 있었는지 보니 ‘악기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서야 제가 연주하는 소리가 층간이나 벽간으로 이웃들에게 얼마나 큰 소음을 주는지.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는 집에서 연습을 할 수가 없게 되니까, 첼로를 메고 밖에 나가서 연습을 하게 되었어요. 봄, 여름, 가을. 날씨가 따뜻할 때는 밖에서 연습을 해도 괜찮은데, 겨울이 되니까 첼로가 현악기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밖에서 연습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 중에 첼로를 연습하는 시간을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는 저에게는 다음 해 봄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말 고민을 많이 하다가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당시에 제가 살고 있던 건물의 이웃들에게 편지를 썼어요. ‘지난 여름, 악기 소리로 여러분들에게 소음을 들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큰 소음으로 피해를 주는지 전혀 몰랐어요. 너무나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하루 일과 중에서 첼로 연습하는 시간을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딱 1시간 동안만 집 안에서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허락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런 내용으로 편지를 써서, 그날 밤에 이웃들의 집집마다 문틈에 편지를 꽂아 두었습니다. 문틈에 편지를 꽂아두러 가는데, 편지를 꽂으려고 하는 손이 덜덜 떨리고. 비유하자면, 정말 제 마음 속에서 ‘두 사람’이 계속 이야기했어요. 한 녀석은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잘못하면 이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을 텐데. 이러면 안 돼.” 이렇게 이야기하고, 다른 녀석은 “아니야. 첼로를 계속하고 싶으면 이렇게라도 해야 돼” 이렇게 말하면서, 마음 속에 있는 두 녀석이 서로 싸우는 겁니다. 그래도 결국에는 저는 첼로가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이웃의 집집마다 다 편지를 꽂아두고 도망치듯이 집으로 왔어요. 그날 밤부터 제가 적어 두었던 핸드폰 번호로 문자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음껏 연습하라’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문자를 보내준 이웃님이 있었어요. ‘인생의 즐거운 한 부분을 마음껏 즐기지 못해서 속상하시겠어요.’
◇ 이성규> 많은 분들이 양해도 해주시고, 그렇게 해서 다시 연습을 시작을 하셨는데. 청취자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어떻게 보기도 힘들고, 듣기도 힘든 분이 첼로를 연주하나. 어떤 말씀 드리고 싶으세요?
◆ 박관찬>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못하는 게 아니라, 또 불가능한 게 아니라, 못하는 게 있으면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면 되고, 또 불가능한 게 있으면 그것을 가능하도록 바꾸어서 방법을 찾아서 한다면. ‘결국에는 다 할 수 있다’고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이성규> 네, 그렇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연주곡은 어떤 곡인지 궁금합니다.
◆ 박관찬> <굿바이>라는 영화를 2011년에 처음 보았고, 1년 동안 돈을 모아서 2011년부터 처음 첼로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첼로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1년을 가르쳐 주시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시는 바람에 레슨이 중단되었어요. 이후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서, 그때부터 다시 제대로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의 주제곡 중 하나인 입니다. 저는 이 곡을 가장 좋아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 노래를 제일 좋아하시는군요. ‘일상 속의 장애인’이라는 장애 인식 개선이 이루어지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어떠한 역할과 노력들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박관찬>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장애에 대해서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시고, 방법도 찾아보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능력. 이런 부분을 얼마든지 우리 사회에서 펼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많이 보이면 좋겠고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더불어서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비장애인도 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온전하게 잘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비장애인도 장애인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애만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봐 주시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이 되면 좋겠습니다.
◇ 이성규> 오늘은 밀알복지재단의 ‘일상 속의 장애인’ 스토리텔링 공모전에서, 시청각 장애가 있지만 첼로를 연주하는 이야기로 대상을 받으신 박관찬 씨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박관찬 씨, 그리고 이주랑 씨. 오늘 나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박관찬, ◐ 이주랑> 네, 감사합니다.
YTN 박준범 (pyh@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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