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열린 V-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5세트. 승부를 가른 것은 선수의 기량도, 작전의 우열도 아니었습니다. 불과 몇 밀리미터,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선(線) 한 가닥이었습니다.
대한항공 마쏘의 공격은 라인을 가려 '인'으로 판독됐고, 현대캐피탈 레오의 서브는 라인 안쪽 바닥이 보인다는 이유로 '아웃’으 판독됐습니다. 두 장면 모두 공이 라인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유사한 상황이었음에도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한국배구연맹 KOVO는 논란이 일자 "가이드라인에 따른 정심"이라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맞습니다. 규정대로라면 오심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오히려 현재의 비디오 판독 규정 자체를 정면으로 다시 묻고 있습니다.
먼저 국제배구연맹(FIVB)의 기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FIVB 규정에 따르면 공의 접지면이 조금이라도 라인에 닿으면 '인'으로 판정합니다. 원칙은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닿았느냐, 닿지 않았느냐'가 유일한 기준입니다.
그러나 V-리그는 다릅니다. KOVO 운영요강 로컬룰 가이드라인 4항은 '접지면을 기준으로 최대 압박된 순간 라인의 안쪽선이 보이면 아웃'으로 판단합니다. 같은 배구이지만, 판정의 출발점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국제 기준이 '접촉 사실'을 묻는다면, V-리그 기준은 '화면에 무엇이 보이는가’로 판단합니다.
KOVO가 호크아이 도입이 어려워 로컬룰을 채택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선택이었습니다. 호크아이는 수억 원대의 설치 비용과 전문 운영 인력을 요구합니다. V-리그 규모의 국내 프로 리그가 감당하기에 결코 가벼운 부담이 아닙니다. 그래서 KOVO는 중계 화면을 기반으로 한 비디오 판독이라는 현실적 대안을 선택했고, '최대 압박 시점에 안쪽 선이 보이면 아웃'이라는 나름의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문제는 이 기준이 물리학 앞에서 흔들린다는 점입니다. 배구공은 지름 약 21cm의 입체적인 구체입니다. 코트를 촬영하는 카메라는 지면과 수직을 이루지 않으며, 높은 곳에서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이른바 ‘가림 효과'가 작동합니다. 공이 바닥에 닿는 지점보다 공의 몸통이 더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카메라 렌즈 입장에서는 공의 몸통이 라인을 시각적으로 덮어씌웁니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이 가림 효과의 정도가 카메라와 공 사이의 거리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카메라에 가까울수록 공은 화면에서 크게 보이고, 공의 몸통이 라인을 덮는 면적도 넓어집니다. 실제로는 라인에 닿지 않았더라도 시각적으로 '인'처럼 보이기 쉬운 구조입니다. 반대로 카메라에서 멀수록 원근법에 의해 공은 작아지고, 카메라의 시선 각도가 낮아지면서 공의 몸통 아래에 숨어 있던 라인 안쪽 바닥이 더 쉽게 드러납니다.
인간의 두뇌는 화면에 보이는 굵고 선명한 선을 기준으로 '가상의 수직 벽'을 세워 인-아웃을 판정하려 들기 때문에, 실제로는 화면 위쪽으로 갈수록 선 위치가 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같은 위치에 공이 떨어졌더라도 카메라와의 거리가 멀면 '아웃'으로 판독될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높아지는 것입니다.
챔피언결정 2차전의 두 장면을 거리에 따른 왜곡 현상 원리에 대입하면 논란의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레오의 서브가 바운드된 지점은 중계 카메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반대편 코트 끝이었습니다. 반면 마쏘의 공격 지점은 상대적으로 카메라와 가까운 위치였습니다. 판독관들은 규정에 따라 화면을 충실하게 확인했지만, 화면 자체가 이미 거리에 의한 왜곡을 품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이 판정이 지닌 논란의 핵심입니다. 규정대로 했지만, 규정이 물리적 현실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KOVO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속 다각도 이미지 분석, 머신 비전 기반 라인 판독, 선수·볼 위치 추적 알고리즘이 포함된 AI 비디오 판독 기술을 2026~2027시즌 도입을 목표로 개발 중입니다. 카메라를 최소 6대 이상 활용하는 이 AI 시스템은 단일 카메라의 각도와 거리 문제를 다각도 데이터로 보정하는 방식입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번 챔피언결정전의 논란은 기술 도입의 속도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현행 로컬룰이 '화면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 한, 기술이 고도화되더라도 원근법의 함정은 구조적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판정의 기준 자체를 국제 기준, 즉 '닿았느냐'는 접촉 사실로 전환하는 논의가 병행돼야 합니다.
1mm의 진실은 화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이 실제로 코트에 닿은 물리적 사실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확대 보기
![카메라와 멀수록 아웃?...거리가 만든]()
AI 생성 인포그래픽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