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파리에 도착해 나흘간의 프랑스 방문 일정을 시작한 교황 레오 14세는 파리 중심부 콩코르드 광장과 샹젤리제 거리 일대에서 8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야외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교황은 프랑스 방문 기간 중 가장 큰 행사인 이번 미사 중 강론에서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신앙에서 행복을 찾고 여러분이 만나는 이들이 새 힘을 얻고 갈증이 해소되도록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교황의 프랑스 공식 방문은 2008년 9월 베네딕토 16세 교황 이후 18년 만입니다.
이번 미사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대선 주자 마린 르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 등 정·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다만, 프랑스가 엄격한 정교분리 원칙을 견지하는 사회인 것을 반영하듯 마크롱 대통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파리 시내는 삼엄한 경비 속에 도심 차량 통행이 차단됐지만,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교황을 보러 나왔다고 AP 통신은 전했습니다.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샹젤리제 거리 일대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샹젤리제 대로로 이어지는 인근 마티뇽가도 오전 8시 전부터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레오 14세 교황이 탄 흰색 '포프 모빌'(교황 의전 차량)이 모습을 드러내자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일제히 교황의 이름을 연호하며 반겼습니다.
교황은 포프 모빌을 타고 개선문부터 콩코르드 광장을 잇는 약 2㎞ 길이의 샹젤리제 대로를 이동했고 거리 곳곳에 모인 환영 인파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들어 올린 아기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내년 8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청년 대회(WYD)에 큰 기대감을 나타내며 교황이 세계 평화와 직결되는 한반도 평화에 큰 역할을 해주길 기대했습니다.
2∼4년 주기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는 전 세계 가톨릭 청년들이 한데 모여 교류하는 축제로, 레오 14세 교황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앞서 교황은 오전에는 이민자·난민 지원 시설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틀째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교황은 파리 시내에 있는 '바키타의 집'을 찾아 아프리카, 중동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이주민들과 장애인들을 만났으며 이민자와의 공존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냈습니다.
이민자 문제는 내년 프랑스 대선 주요 쟁점 중 하나로, "프랑스인 우선" 원칙을 내건 극우 RN의 르펜은 차기 대선 후보군 중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레오 14세는 방문 첫날인 25일에는 파리 엘리제 궁에서 마크롱 대통령 등과 만나 AI의 무분별한 사용과 핵 군비 경쟁의 위험성 등을 경고했습니다.
특히 AI를 거론하며 "우리 일상생활로 들어온 기계의 낙원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후 미국의 탈퇴 여파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네스코 본부에서 연설한 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저녁 기도 행사를 집전했습니다.
또 파리 북부 외곽의 생드니 경기장에서 청년 신도 약 8만 명의 환호 속에 심야 기도를 이끌었습니다.
교황은 이번 방문에서 종교적 행사에 집중하겠다며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한 프랑스 훈장과 환대행사를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공 영역에서 종교 색을 엄격히 금지하는 철저한 세속화를 지향하는 프랑스에서는 작년 기준 인구 6,900만 명 가운데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이 약 5%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올해 부활절에는 사상 최대인 2만 천 명이 성인 세례를 받는 등 최근 몇 년 사이 청소년·성인 세례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프랑스 주교회는 밝혔습니다.
다만 레오 14세 교황은 야외 미사에 앞서 파리 가톨릭대에서 최근 세례를 받은 신자들을 만나 신자 수가 증가한 것을 두고 프랑스 교회가 "순진하게 낙관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교황은 파리에 이어 가톨릭 순례지인 남부 루르드, 유럽연합(EU) 창설 중심지였던 독일 접경 도시 메츠를 찾습니다.
루르드에서는 성직자 성 학대 피해자 7명을 만나고 메츠에서는 '평화와 통합을 위한 유럽의 뿌리'에 관한 연설을 할 예정입니다.
YTN 이승윤 (risungyo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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