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대중문화사에 한 획을 그었던 고인의 연기 인생을, 김헌식 문화 평론가와 함께 짚어 보겠습니다. 평론가님 나와 계십니까?
[김헌식 / 문화 평론가]
안녕하십니까?
[앵커]
고인이 어젯밤 서울 강서구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세상을 떠났는데 오늘 많은 분들이 놀라셨을 것 같아요.
[김헌식 / 문화 평론가]
그렇습니다. 생전 병상에서 퇴원 후에 막걸리 한 잔을 약속했었는데요. 그런 일화가 다시 주목받아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날 오후 10시 30분쯤 서울 한 병원에서 입윈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난 건데요. 지난해 3월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불편해져서 재활치료를 이어왔고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한국인의 밥상에서도 하차했습니다. 올해 5월에 연기인생을 되돌아본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가 방영됐지만 치료에 전념하면서 직접 카메라 앞에는 서지 못해서 이때도 우려가 있었는데요. 어쨌든 고인의 별세 소식에 방송계와 많은 분들이 애도를 하고 있습니다. 생전 병상에서도 보였던 호탈한 모습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는데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지는 것은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은 뒤 어린이들을 위한 사회공헌에도 힘써왔고 전원일기 에피소드를 계기로 활동을 해 왔었습니다.
[앵커]
한 시대의 어른이 떠났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허망함을 느끼고 계실 것 같은데요. 배우 최불암 씨, 67년 동안 드라마와 영화 또 연극 무대를 오가면서 활약했었잖아요. 최불암 배우의 연기 인생도 짚어주시죠.
[김헌식 / 문화 평론가]
텔레비전과 인연을 맺은 건 1967년 서울중앙방송, 현 KBS 특채 6기 탤런트로 입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한국형 수사물의 시초격으로 18년간 방송된 수사반장은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절찬리에 방송됐고요. 여기에서 박영한 반장 역을 했습니다. 22년간 방송된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는 1980년에서 2002년까지 계속됐는데 여기서 양촌리 김 회장 역을 해 왔습니다.
1970년대 산업화 사회부터 전국적으로 한국인에게 친근한 안방의 이웃이자 또 우상으로 자리잡았고 오랜 세월 동안 그 뒤로도 시청자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서민적이고 포근한 이미지로 큰 사랑을 받아왔고 국민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대 그리고 나 같은 작품을 통해서도 국민 배우로 더욱 자리매김했는데요. 70여 년 인생 연기에서 130여 편의 드라마와 90여 편의 영화, 55편의 연극에 출연하면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지난 5월에는 고인의 연기인생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에서 박근형, 백일섭, 채시라 등 동료 후배 배우들이 출연해서 그의 연기와 인간적인 면모를 전했기 때문에 이 다큐멘터리도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앵커]
또 고인의 연기 열정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최불암 배우는 젊은 시절부터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조연이든 노역이든 가리지 않았죠.
[김헌식]
그렇습니다. 1967년 28살 나이에 처음으로 맡은 역할이 김종서 장군이었습니다. 그것도 대유정란 당시 노년 역할이었고요. 이후로 줄곧 노역으로 열연을 하게 됐습니다. 드라마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에서는 아예 이승만 대통령 역할을 맡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1980년 당시 41살의 나이에 80대였던 이승만 대통령 역을 맡았던 것이고요. 수사반장은 노인 역할은 아니었지만 한 7살 정도의 나이를 선보이기도 했었는데 여명의 눈동자, 영웅시대, 궁, 식객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조연과 주연,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말씀하신 대로 작품의 완성도와 인간미 넘치는 선을 연기하기 위해서 일평생 연기를 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고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가 바로 전원일기인데요. 많은 분들이 향수에 잠기실 것 같습니다. 최불암 배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 이런 모습이잖아요. 최불암 배우가 연기한 아버지의 모습이 당시에 대중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김헌식 / 문화 평론가]
아무래도 대가족을 이끄는 가장으로서 때로는 엄격하지만 또 자식들의 허물을 묵묵히 품어주는 따뜻함. 그래서 한국인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어른이자 아버지상을 완성을 했습니다. 특히나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속에서 변화와 가족의 해체를 겪던 많은 국민들에게 큰 안식처가 되어줬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특히 극적인 영웅 대신에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과 삶, 시대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우리 이웃이나 부모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깊은 유대감을 많은 국민들이 느꼈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또 최불암 배우 하면 특유의 중후한 목소리와 따뜻한 미소 또 고개를 젖히면서 내는 그 특유의 웃음소리가 고인의 상징이었잖아요. 한편으로는 진지하고 근엄한 이미지와는 달리 최불암 시리즈 유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었는데 어찌 보면 대중이 그만큼 고인을 친근하게 느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대중문화 현상은 어떻게 보세요?
[김헌식 / 문화 평론가]
말씀하신 대로 상징적인 시그니처가 바로 웃음이죠.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기침하듯이 파 하는 웃음소리가 친근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주었던 최불암 배우의 독창적인 시그니처, 대표적인 표현이었는데요. 사실 이 파 하는 웃음 시리즈, 유머 시리즈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알고 있는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 허당기 있고 소탈한 모습을 보일 때 반전 매력과 또 동네 할아버지 같은 친근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점들이 유머 시리즈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인도 자기가 희화화되는 것에 대해서 불호령을 내리기도 했는데 학생들이 이 시리즈를 보면서 잠시나마 입시 스트레스를 털고 이러는 것을 오면서 나중에는 출판사에 저작권을 무상으로 내주는 그런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친근하게 섭외하는 방식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세대를 연결하는 소통적인 모습을 스스로 했던 점에서 봤을 때 대중적인 어른의 모습을 잘 보여줬기 때문에 더 시너지 효과를 낸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앵커]
요즘은 빠른 전개나 강렬한 캐릭터가 주목받는 콘텐츠가 많아졌잖아요. 그런데 최불암 배우의 연기는 큰 동작이나 과장된 표현 없이도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여 왔는데 오늘날의 연기와 비교했을 때 최불암 씨가 보여줬던 연기의 미덕은 뭐였다고 보세요?
[김헌식 / 문화 평론가]
무엇보다도 연기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멋지게 보이려고 인위적으로 부각하지 않았다는 점이 큰 특징이 되겠습니다. 사실 연극계에서 처음 활동할 때는 최불암 배우가 그렇게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외모적인 측면들이 매우 중요해졌거든요. 그래서 아마 최불암 배우는 자신의 외모와 정체성을 생각했을 때 누구를 대변하는 연기를 해야 할 것이냐, 누구를 더 캐릭터화할 것이냐고 했을 때 보통 서민의 아버지 혹은 이웃을 대변해야겠다 하는 연기를 평생 추구해 왔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큰 호응을 받았다고 볼 수 있겠고요.
그런 점에서 멋진 주연배우만 하려고 하지 않고 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연기의 폭을 넓히려고 했다는 점. 사실 그 기반에는 연극배우로서의 연기력에 좀 더 초점을 맞추면서 관객들이 보고자 하는 것들을 어떻게 구현해내느냐, 여기에 연기철학을 매진해 왔기 때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또 최불암 배우는 전원일기에서 김혜자 배우를 비롯해서 수많은 배우들과 오랜 시간 호흡 맞춰왔지 않습니까? 한 작품에서 20년 넘게 함께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최불암 배우는 동료들에게 또 후배들에게 어떤 연기자이자 선배였을까요?
[김헌식 / 문화 평론가]
사실 앞서도 후배들의 조언을 소개도 해 드렸었는데요. 그런 점에서 한때는 굉장히 극단적인 선택과 관련된 좌절도 겪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자리매김을 해 왔거든요. 그래서 그런 점들이 후배들한테도 굉장히 귀감이 됐다는 겁니다. 사실 연기자들이 굉장히 화려해 보이지만 그 화려한 이면에 굉장히 고뇌와 갈등들이 상당히 많이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유명세와 인지도보다는 작품 속의 캐릭터를 통해서 연기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행보를 계속 보여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화려한 작품들 굉장히 많지만 자기가 맡은 역할과 작품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는 측면, 그리고 대중적인 작품을 관객들이나 국민들이 선호할 때 꾸준히 계속 지속해 가는 것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앞서 수사반장이나 그리고 전원일기도 말씀하셨지만 한국인의 밥상 같은 경우도 14년 동안 꾸준히 해 오신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한 번 맡은 역할이나 콘텐츠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면서 국민과 호흡하려는 자세, 이런 부분들이 지금 인터넷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짧은 자극적인 콘텐츠만 흐름을 추종하는 측면에서 우리 말로 치면 발효된 음식, K푸드 같은 느낌들도 계속 지속해 왔기 때문이 아닌가. 이런 점들이 한국인의 밥상과 또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한국 드라마의 태동기부터 또 전성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최불암 배우는. 한국 방송 드라마 역사에서 최불암이라는 배우가 갖는 의미도 전해 주시죠.
[김헌식 / 문화 평론가]
가장 친근하고 너른 품을 가졌던 영원한 국민 아버지였고요. 사회적 책임을 다한 진정한 어른이라고 기억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화려한 스타의 삶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눈 이웃의 진면모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겠고요. 묵묵하면서 따뜻하게 가정을 지탱하는 한국 아버지의 전형이 무엇인지를 잘 정립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 수사반장에서는 박영한 반장으로 활약하면서 인간미 넘치는 형사상을 정립해서 당시 부정적인 경찰 이미지까지도 바꿨고. 그러니까 결국에는 경찰과 공권력 혹은 정부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잘 보여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 평범한 이웃들의 삶을 보듬어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는 평범한 이들의 일상과 애환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에서 봤을 때 우리 배우들이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요. 온기와 위로를 줬던 최불암 배우를 영원히 국민들은 잊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듭니다.
[앵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전화 연결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김헌식 문화 평론가와 함께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YTN 임성재 (lsj621@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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