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김정일의 뒤를 이어 김정은 체제를 맞은 지 1년이 된 북한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특히 일반 주민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궁금해하는 분들이 제법 있을 것 같은데요, 독일 국적의 동포 학자가 지난 98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10여 년간 세 차례 북한을 찾아 달라진 사람들의 모습과 도시 풍경을 렌즈에 담아왔습니다.
함께 보시죠.
고층 빌딩이 늘어선 평양의 모습입니다.
굴곡 있는 모양의 멋드러진 고급 아파트도 등장했는데요.
10여 년 전에는 네모 반듯한 회색빛 건물 일색이었는데 많이 달라졌네요.
시민들의 얼굴에도 한층 여유가 느껴집니다.
평양을 가로지르는 대동강에서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의 모습도 보이고요.
엄마 손을 잡고 바이올린을 배우러 가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교복을 입은 북한 여대생들입니다.
무릎 위로 살짝 올라간 치마에 시선이 쏠리는데요, 5~6cm는 돼 보이는 뾰족 구두와 살짝 개성을 살린 머리 스타일까지 패션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의 복장도 한층 밝아졌습니다.
옷과 양산, 가방까지 모두 보라색으로 맞춘 멋쟁이 아주머니, 참 눈에 띄죠?
미국 유명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가방, 소품들도 등장합니다.
외교적으로는 대립하고 있어도 귀여운 만화 캐릭터는 밉지 않은가 봅니다.
북한도 10여년 전과 비교했을 때 좀 더 밝아지고 생기가 도는 느낌이 드네요.
이 사진을 촬영한 사람은 독일 동포 김영상 박사입니다.
팔순을 넘긴 김 박사는 18살에 고향 개성을 떠나 이산가족의 아픔을 갖고 있는데요, 프랑크푸르트를 전화로 연결해 직접 체험한 북한 사회의 변화상을 들어보겠습니다.
김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질문]
지난 1998년과 2003년, 그리고 10년 만인 지난해 북한을 다녀오셨는데요.
형제들이 북한에 생존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방문했을 때 만나셨습니까?
[답변]
3번의 방문 가운데 2003년 딱 한번만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 고향은 개성인데요.
6.25 때가 18살이었는데, 미군 일선 보병부대와 함께 참전한 후 홀로 남한에서 살다가 대학 졸업 후 1958년에 독일로 유학 왔습니다.
부모님과 두 남동생은 개성에 남아 있었는데, 2003년 이산가족 상봉 때 막내 동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바로 아랫 동생은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질문]
청년 시절 남한으로 내려와서 다시 고향의 모습을 보기까지 60여 년이 걸린 셈이네요.
처음 방문했을 때 어떤 심정이 드셨습니까?
[답변]
막내 동생은 6.25 때 7살이었고, 2003년에 다시 만났을 때는 60(예순)살이었습니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서로 전혀 알아보지 못했고, 이방인 같아서 몇 초 동안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하지만 6.25 사변후 작고하신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서로 울며 가까워졌습니다.
[질문]
10여 년에 걸쳐 세 차례 다녀오셨잖아요.
그동안 북한 사회의 어떤 점이 가장 크게 변했다는 인상을 받으셨나요?
[답변]
지난 10년 사이의 변화 가운데 가장 눈에 띈 게 몇 가지 있었는데요.
먼저 자동차와 자전거, 휴대전화 붐이 일고 있었습니다.
현지에서 듣기로는 현재 휴대전화기가 100만 개 이상 유포됐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북한 주민들이 외국인 방문자를 대하는 태도가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거의 적대시 했었는데, 지금은 평양이든 시골이든 북한 주민들이 친절하고 여유 있게 웃으면서 관광객들을 대하더라고요.
아마 관광사업으로 외화 획득을 하려는 운동이 효과를 보는 것 같습니다.
[질문]
저는 도시 여성들의 패션이 화사하게 변한 것에 눈길이 가던데요.
북한의 경제 사정이 전보다 나아졌기 때문이라고 봐도 될까요?
[답변]
여성들의 의상이 이전에는 몇 가지 단색 뿐이었는데 지금은 젊은 여자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5~7cm 높은 하이힐을 신은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수력 발전소가 신설돼 전기 배전이 양호해져인지 도시 전체가 훤해진 느낌이었는데요.
자동차 합작공장, 자전거 공장 등이 잘 돌아가고 있었고, 북한의 경제 사정이 달라진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질문]
평양같은 대도시 뿐 아니라 북한의 지방도시도 가 보셨죠?
도시와 농촌간의 생활 수준은 격차가 심하던가요?
[답변]
남포, 원산, 개성 시내에서 1시간 가량 산보도 하고 농촌 길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항구도시 남포는 다른 지방 도시와 비교했을 때 신설 아파트도 많이 보이고, 교통도 활발해지는 등 10년새 더 크게 확장되고 현대화 돼 있었습니다.
큰 길가의 농가나 우리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농촌은 비교적 잘 정비돼 있었지만, 다른 지역은 옛날과 똑같아 보였습니다.
논밭 경작은 아직도 60년 전같이 소나 인력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질문]
건강하실 때 고향 북한을 다시 볼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아직도 고향에 가보지 못한 이산가족들, 이제 연세들이 많아서 통일에 대한 간절함이 더할 것 같은데요.
김 박사님은 어떠십니까?
[답변]
김일성 주체 사상 아래 3세대 동안 살아온 북한 주민들은 사고방식도 그렇고 생활 이념, 말도 남한 국민들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거리는 시간과 더불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 거리의 차이를 좁히려면 인간대 인간의 접촉이 자주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통일을 위한 중요한 준비과정이라고 봅니다.
늙어가는 이산가족들에게도 죽기 전이나 혹은 그들의 후손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줘서 남북 사이의 인간의 정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
북한을 다녀온 여행기를 사진과 동영상으로도 담았지만, 도표와 글로도 잘 정리해 두셨다면서요?
북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들인데, 앞으로 책을 쓰거나 전시할 계획은 없으신지요?
[답변]
독일로 떠날 때까지의 제 한국 생활은 'C-Raiton'이라는 자서전에 기록을 했는데, 한국어판 출판도 올해 내려고 합니다.
3차에 걸친 북한 여행기는 아직 책으로 내진 못했는데요.
하지만 사진과 동영상을 잘 정리하고 있고, 북한의 변화상을 도표로 만들어 한눈에 보기 쉽게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매년 4~5차에 걸쳐 독일 주민들에게 강연을 하면서 한국의 역사적 실정을 제대로 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질문]
앞으로 다시 북한을 방문할 계획은 없으십니까?
[답변]
북한 방문은 지금도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여행입니다.
2003년 방문후에는 심장병으로, 2012년 방문 직후에는 폐렴에 걸려 고생했습니다.
2015년경에 북한을 다시 방문하고 싶은데, 나이나 건강 상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건강하셔서 다시 한번 북한에 있는 형제들을 만나시고, 선생님의 기록이 북한 사회의 현재를 이해하는 밑거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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