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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가족을 위해서라면...근대사의 아버지들

2015.01.03 오후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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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남북이 분단된지 70년이나 되는 해입니다.

최근 관객 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은 광복 이후 근대사를 산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굴곡의 세월을 헤쳐온 아버지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박신윤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실업과 외화 부족에 박정희 정부는 결국 노동력의 해외송출을 추진했습니다.

1963년 파독광부 500명 모집에 4만 6천 명이 지원할 정도로 당시 한국의 실업난은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인터뷰:하대경, 한국파독협회 회장]
"통계상으로는 30% 이상의 청년 실업률을 갖고 있던 때라 그래서 자기의 꿈은 두말할 것도 없고 가족 먹여살리는 길을 택했던 모양입니다."

군사와 경제적인 이유로 베트남전 파병도 이뤄졌습니다.

8년간 31만 2천8백 명이 파견돼 4,960명이 이역만리 낯선땅에서 전사했습니다.

[인터뷰:김성욱,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사무총장]
"저희들이 참전을 해서 10억 달러의 외화를 소득해서 국가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고 생각하고 있죠. 거기에 대한 참전 전우들이 상당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죠."

이들의 희생은 1970년대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남북이 관통되고 전국 곳곳에는 대규모 공장이 건설됐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석유 파동으로 한국 경제는 다시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 때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우리 건설 근로자의 중동 진출이 본격화됩니다.

[인터뷰:현대건설 기록영화]
"현대맨들은 혹독한 자연과 싸워 중동의 대규모 인프라 건설에 참여하면서 75년부터 4년간 51억 6천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1955년에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가입할 당시만 해도 1인당 국민총생산이 65달러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이었습니다.

국내총생산은 통계가 처음 작성된 1953년 13억 달러에서 1972년에 100억 달러대, 1995년에 5천억 달러를 넘어 2013년 1조 3천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기록적인 성장 뒤에는 모든 사람들의 힘이 컸지만 그 시대를 산 아버지들의 역할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인터뷰:김정현, 작가]
"전쟁 후 산업시대 아버지들의 삶은 온전히 아버지 자신들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아버지로서의 삶, 자신들이 겪은 전쟁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하겠다는 희생정신, 그것은 애국심 이전에 자발적인 희생이었습니다."

분단 이후 70년 굴곡의 삶을 살며 폐허 속의 대한민국을 맨손으로 일으킨 이들은 우리시대 아버지의 자화상입니다.

YTN 박신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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