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926년 일제강점기 때 처음 발굴된 경주 서봉총, 봉황 장식 금관이 나온 곳이죠.
서봉총에 대한 재발굴 작업을 통해 호화로운 제사 음식 등 천5백 년 전 신라의 생활상이 하나둘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승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천5백 년 전 신라 왕비와 아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경주 서봉총,
4년 전 무덤 둘레돌에서 큰 항아리 27점이 발견됐습니다.
네모 모양, 둥근 모양 제기가 옹기종기 담겼습니다.
항아리 안에서 발견된 물고기와 조개류 유체는 7천7백 점,
분석 결과 가을에 많이 잡히는 청어와 방어 등 온갖 종류의 생선이 확인됐습니다.
특히 돌고래와 복어, 성게 등 귀한 음식도 제사에 쓰였습니다.
민물 거북의 일종인 남생이 껍질도 나왔습니다.
[김대환 /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학예연구사 : 귀족들은 아주 좋은 식생활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요. 그렇게 신선한 음식들을 바로바로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유통 체계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서봉총은 일제가 경주역을 확장하기 위해 흙을 파다 발견했습니다.
건설 물자 조달과 유물에 대한 욕심이 맞아떨어져 무덤을 덮는 흙은 모두 퍼 날라 졌고, 고고학의 기본인 보고서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금관을 발견한 일제는 고고학자인 스웨덴 황태자를 초청해 거두게 했습니다.
서봉총이라는 이름은 스웨덴의 한자 표기(瑞典)와 금관 장식인 봉황에서 한 글자씩 따와 지어진 것입니다.
발굴을 주도했던 고이즈미 아키오는 평양박물관장으로 부임한 뒤 서봉총 금관을 기생에게 씌우고 연회를 벌여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2016년과 2017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을 통해 서봉총은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무덤이 어떻게 조성됐는지 방법이 밝혀졌고, 북분 직경도 일제가 파악한 것보다 10m 이상 컸습니다.
특히 신라 왕릉에서는 가장 오래된 상석이 발견돼 주기적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의 졸속 발굴로 밝혀지지 못한 고분의 실체와 신라의 생활상이 재발굴 조사 결과 확인되고 있습니다.
YTN 이승은[selee@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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