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태현 :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요. 유가 상승이 경제 성장률이라든지 우리나라 경제 근간까지 흔든다 이런 지적이 나와요. 얼마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겁니까?
◇ 허란 :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을 2.0%로 전망했는데, 이 전제가 두바이유 배럴당 62달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미 86달러를 넘어선 상태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과거 오일쇼크처럼 유가가 150달러까지 치솟는 시나리오에서 성장률이 0.8%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씨티 연구진은 브렌트유가 82달러를 지속할 경우 성장률이 0.45%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봤습니다. 물가 측면에서도 빨간불입니다. JP모건 체이스는 유가가 10% 오를 때마다 물가가 0.1%포인트 오르고 성장률은 0.2%포인트 떨어진다고 분석했습니다. 경기는 침체되는데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는데, 유가 급등으로 물가 상승 압력은 커지고 경기는 나빠지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미 1월 전산업생산은 1.3% 감소했고 건설투자도 11.3% 급감했는데, 여기에 이란 전쟁이라는 변수까지 겹친 겁니다.
◆ 조태현 : 안 좋은 상황에서 또 다른 악재가 터진 셈인데요. 지금까지 우리 경제 전반적으로 안 좋은 상황에서 반도체가 전체를 이끌어가는 그런 국면이 강했잖아요. 반도체는 괜찮습니까?
◇ 허란 : 단기적으로는 반도체 수요가 버텨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AI 열풍으로 고대역폭 메모리 HBM을 비롯한 고사양 반도체 수요는 견조하고, 전쟁 이후에도 AI 관련 주가가 어느정도 유지가 되는 등 흐름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정부도 반도체 수출 금액과 물량이 크게 늘고 있어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중동 사태가 장기화되면 반도체도 간접 영향권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반도체는 대부분 항공으로 운송하는데 중동 영공이 폐쇄되면 물류비용이 오르고 운송 지연이 발생합니다. 반도체 공장은 전력 소비가 큰 산업이라 천연가스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에너지 비용 상승이 직접 타격이 됩니다. 가톨릭대 양준석 교수는 "가스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반도체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더 큰 그림에서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반도체 사이클이 내년 하반기쯤이면 끝날 가능성이 있다"며 반도체 하나에만 기대는 구조에서 새 먹거리를 찾아야 할 때라는 지적도 내놨습니다.
◆ 조태현 : 이런 우려가 시장에 반영이 되는 거겠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9% 정도 지금 빠지고 있습니다. 코스피 전체로는 7% 넘게 빠져서 5,200선 아래로 내려섰는데요.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이 이번 중동 전쟁의 자동차 산업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냈는데 이것도 내용이 심각한 것 같아요. 현대차 주가도 지금 거의 10% 빠지고 있습니다.
◇ 허란 : 네, 맞습니다. 시장조사기관 베른스타인이 발표한 보고서인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번 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중국·일본·한국 등 아시아 자동차 업계라는 겁니다. 중동은 아시아 자동차 업체들의 핵심 수출 시장입니다. 지난해 중국 승용차 수출의 17%, 약 50만 대가 중동으로 향했습니다. 중동 전체 시장에서는 도요타가 17%, 현대차가 10%의 점유율을 갖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이란 내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고, 중동 전역의 차량 수송과 공급망이 막히고, 유가 급등으로 자동차 수요도 쪼그라드는 세 가지 경로로 타격이 온다는 분석입니다. 특히 이란은 중동 전체 연간 자동차 판매 300만 대 중 38%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인데, 이 시장이 전쟁으로 사실상 닫혀버리는 겁니다. 서방 제재로 일찌감치 이란을 떠난 유럽·미국 업체들과 달리 현재 이란에서 영업 중인 건 체리·창안 등 중국 업체들이라 이들의 피해가 가장 크겠지만, 현대차처럼 중동 전역에서 높은 점유율을 가진 브랜드도 직접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도요타는 이미 중동 물류 차질에 대비해 랜드크루저 등 SUV를 포함한 생산량을 4만 대 줄일 계획이라고 일본 닛케이 신문이 전했습니다. 베른스타인은 "자동차업계에 가장 큰 위험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가를 계속 끌어올리고 글로벌 경제 신뢰를 약화해 걸프 지역을 넘어 자동차 판매 전체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조태현 : 알겠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들 짚어봤는데 가장 중요한 건 이 상황이 얼마나 갈 것인가, 이 부분이겠죠. 그런데 지금 상황을 봐서는 트럼프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게 길어질 것 같아요.
◇ 허란 : 네, 맞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전 초기 핵시설 등 군사 목표만 타격하고 빠지는 ‘외과적 공습’ 형태를 시사했지만 이란이 걸프 산유국가 미군 기지까지 공격을 확대하면서 전선이 넓어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공세를 이어가겠다고 밝혔고, 심지어 이란의 다음 지도자 선출에 관여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쟁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됐느냐는 의문도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사마다 전쟁 기간을 다르게 얘기했는데요. 한 매체에는 2~3일 내에 끝날 것이라고 했다가 다른 매체에는 4~5주 걸릴 수 있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의 쿤스 상원의원은 “변함없이 일관된 것은 전쟁 수행 전략이 없다는 것”이라고 직격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취임 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직원의 3분의 1 이상이 해고된 상태라서 작전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관리할 전문가가 퇴보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베른스타인도 분쟁 장기화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설령 전쟁이 끝나더라도 여진이 길다는 것입니다. 한 번 줄인 유전 생산량이 정상 회복까지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리고, 또 각국이 전략 비축유를 앞다퉈 확대하면서 오히려 유가를 추가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한국처럼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단기 비축량은 넉넉하지만 전쟁이 1년 가까이 이어진다면 러시아산 원유라는 대안을 갖고 있는 중국, 인도보다 오히려 더 힘든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 조태현 : 어려운 상황이네요. 트럼프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대체 이 전쟁의 목표가 무엇인지 본인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길어질 것 같다는 우려가 강하게 듭니다. 지금까지 허란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허란 :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