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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자본이 쌓아올린 벽 [한방이슈]

한방이슈 2026.06.11 오전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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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직장에서 이런 대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이닉스로 차 바꿨대", "삼성전자로 대출 갚았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AI 열풍에 메모리 반도체, 특히 HBM 수요가 폭발하면서, 한국 증시를 두 종목이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상승장에 올라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매달 월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묘한 박탈감을 느낍니다.

나만 뒤처진 것 같은 불안, 이른바 포모(FOMO)입니다.

이 불안의 밑바닥에는 더 무거운 질문이 깔려 있습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월급을 모으는 것, 그것만으로 더 나은 삶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근로소득으로 집을 사고 노후를 준비하던 그 공식이, 지금도 유효한가?

월급 모아 주식 좀 산 동료가 부러운 게 아닙니다.

일해서 버는 돈의 속도가, 가진 것이 불어나는 돈의 속도를 도무지 따라잡지 못한다는 그 느낌.

그것이 진짜 박탈감의 정체입니다.

그리고 이건 기분 탓이 아닙니다.

한 경제학자가 1,700년의 역사를 뒤져, 노동이 자본을 이긴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 속도 차이는 지금 전 세계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왜 열심히 벌수록 뒤처지는가…피케티의 두 글자

2025년 3분기, 미국 노동자들이 나라 전체 소득에서 가져가는 몫이 53.8%까지 떨어졌습니다.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47년 이래 역대 최저입니다.

같은 해, 전 세계 억만장자들의 자산은 2조 5천억 달러 늘었습니다.

하위 절반, 41억 명이 평생 모은 전 재산과 맞먹는 돈이 단 1년 만에 소수의 손에 쌓인 것입니다.

포춘 500대 기업들의 순이익은 2024년 사상 최고치인 1조 8,70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성장의 과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그것이 흘러가는 방향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10년 앞서 예고한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그의 공식은 단 두 글자입니다.

"r > g"

여기서 r은 영어로 'rate of return on capital', '자본 수익률'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가진 돈이나 자산을 굴려서 불어나는 속도입니다.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 주식에서 나오는 배당과 시세 차익, 예금 이자 같은 것들입니다.

g는 'growth rate', 경제성장률입니다.

나라 경제가 커지고 일해서 버는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입니다.

r > g, 즉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가 일해서 버는 속도보다 항상 빠르다는 뜻입니다.

2013년 출간된 <21세기 자본>에서, 피케티가 결론에 도달한 방식은 독특합니다.

그는 추상적인 경제 모델 대신, 수백 년간 쌓인 세금 기록과 국가 장부를 직접 발굴해 분석했습니다.

경제학을 역사학처럼 다룬 셈입니다.

700쪽이 넘는 이 두꺼운 경제학 책은 출간되자마자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1,700년의 증거…가진 자는 왜 항상 더 빠르게 불어났는가

피케티는 인류 경제사 1,700년을 통째로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1,700년까지 세계 경제는 1년에 평균 0.1%씩만 성장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에도 1.5%를 넘지 못했습니다.

반면 땅이나 건물, 공장처럼 자산을 가진 사람들의 수익률은 시대를 막론하고 연 4~5%를 유지했습니다.

이 차이가 핵심입니다.

일해서 버는 속도와 가진 것이 불어나는 속도 중 가진 것이 항상 앞섰습니다.

농경 시대에도, 식민지 시대에도, 산업화 시대에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피케티는 이 흐름을 하나의 곡선으로 그려냈습니다.

알파벳 U자 모양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불평등은 곡선의 왼쪽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유럽이 '벨 에포크(Belle Epoque)', 즉 화려한 시절이라 부르던 때입니다.

겉은 번영했지만,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90%를 쥐고 있던 극단적 격차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다 20세기 중반, 곡선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격차가 줄어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곡선은 다시 오른쪽으로 치솟고 있습니다.

100년 전 그 꼭대기를 향해서 말입니다.

노력한 사람이 아니라 이미 가진 사람이 더 빨리 부자가 되는 구조, 이것이 불평등의 뿌리입니다.
 
 
20세기는 왜 달랐는가…"비정상의 시대"

문제는 U자 곡선의 바닥, 즉 20세기 중반입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선진국에서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노력하면 계층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실제로 작동하던 시기였습니다.

피케티의 분석은 냉정합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아니라, 역사적 예외였다고 말합니다.

세 가지 특수한 조건이 겹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공장과 건물, 금융자산을 물리적으로 파괴했습니다.

자산이 줄어드니 가진 것이 불어나는 속도도 낮아졌습니다.

둘째. 전후 복구 과정에서 대규모 노동력이 투입되며 경제가 사상 유례없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일해서 버는 속도가 치솟으면서 격차가 좁혀졌습니다.

셋째. 미국 최고 소득세율이 한때 90%를 넘었습니다.

많이 번 사람에게 많이 걷어서 다시 나눴습니다.

피케티가 말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배운 세상,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고 부가 고르게 퍼지던 시절, 그것이 사실은 '역사의 비정상'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비정상은 1980년대부터 빠르게 끝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비정상의 종료"…격차의 귀환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의 감세, 금융 규제 완화, 노동조합 약화는 수백 년 묵은 원래의 공식을 복원시켰습니다.

U자 곡선이 다시 위로 꺾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숫자가 말합니다.

1996년부터 2025년까지, 전 세계 억만장자들의 자산은 1년에 평균 7.5%씩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세계 경제는 연평균 2.3% 성장했습니다.

격차가 5% 포인트 이상 벌어진 것입니다.

2025년 기준, 전 세계 억만장자 수는 3,028명.

1년 만에 247명이 늘었고, 이들의 자산 총합은 16조 달러를 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상위 1%의 자산 비중이 전체의 31.7%,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입니다.

격차를 완화했던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사라진 결과입니다.

자본이 노동보다 빠르게 불어나는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변수가 등장합니다.

인공지능, AI입니다.
 
 
AI, 격차를 양쪽에서 동시에 벌리는 힘

지금까지 자본은 노동보다 빠르게 불어났습니다.

하지만 자본은 여전히 노동을 필요로 했습니다.

공장도 사람이 돌려야 했고, 빌딩도 사람이 관리해야 했습니다.

AI는 처음으로 그 전제를 깨고 있습니다.

수익이 불어나는 속도부터 보겠습니다.

엔비디아의 2025 회계연도 매출은 1,152억 달러. 전년 대비 142% 급증했습니다.

직원 3만 6천 명이 만들어낸 숫자입니다.

매출의 75%가 순이익으로 남습니다.

빅테크 8개사의 2024년 주당순이익 성장률은 37.6%. 같은 해 S&P500 전체 평균 7.7%의 다섯 배입니다.

AI 자본에 올라탄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의 수익률 격차가 이미 다섯 배입니다.

한 가지 비교가 핵심을 드러냅니다.

메타는 직원 6만 7천 명으로 1,170억 달러를 법니다.

석유회사 '엑손모빌(ExxonMobil)'은 6만 2천 명으로 비슷한 매출을 냅니다.

그런데 AI가 발전할수록 '메타(Meta)'는 직원을 더 줄이고도 더 많이 벌 수 있지만,

엑손모빌은 사람 없이는 석유를 캘 수 없습니다.

이제 반대쪽, 그러니까 일해서 버는 쪽의 상황을 보겠습니다.

2025년 상반기에만 AI에 직접 기인한 감원이 7만 7천여 건이었습니다.

세계 최대 콜센터 기업 '텔레퍼포먼스(Teleperformance)'는 2년 사이 직원 38%를 AI로 대체했습니다.

미국 콜센터 종사자는 같은 기간 약 90만 명이 줄었습니다.

스탠퍼드대 연구에 따르면, AI가 대체하기 쉬운 직종의 사회 초년생 고용은 다른 직종 대비 13% 감소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소비를 줄입니다.

소비가 줄면 경제가 천천히 성장합니다.

성장이 느려지면 노동으로 버는 속도도 낮아집니다.

AI는 자산가의 수익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일하는 사람들의 속도를 끌어내립니다.

피케티의 공식이 양쪽에서 동시에 확대되고 있는 것입니다.
 
 
"피케티는 틀렸다"…반론의 목소리

물론 피케티에게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책은 출간 직후부터 경제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데이터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부터, 불평등은 공식이 아니라 정치가 만든다는 반박까지 쏟아졌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날카로운 반론은 당시 MIT 대학원생이던 '매슈 로글리(Matthew Rognlie)'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불어난 자본 수익의 대부분은 사실 '부동산 가격 상승'에서 나왔다"고 반박했습니다.

쉽게 말해, 부자가 더 부자가 된 건 첨단 자본을 굴려서가 아니라 집값과 땅값이 올랐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이게 맞는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해법이 글로벌 부유세가 아니라 주택 공급 확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반론조차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는 현상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투는 것은 그 원인이 자본의 본성이냐, 아니면 부동산이냐일 뿐입니다.
 
 
피케티의 처방…현실의 벽

피케티는 해법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전 세계가 손잡고 자산에 매년 1~2%의 세금을 매기는 '글로벌 부유세'입니다.

한 나라만 세금을 매기면 부자들이 자산을 다른 나라로 옮기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최고 소득세율을 다시 80% 수준까지 끌어올려 최상위층의 과도한 보수를 억제하자는 것입니다.

셋째, 노동자가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누구나 일정한 기본 자산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하자는 구상입니다.

하지만 모두 같은 벽에 부딪힙니다.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세금을 낮춰 기업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AI 자본은 더 까다롭습니다.

데이터센터는 국경을 쉽게 옮기고 알고리즘의 가치는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빅테크 과세를 오히려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1,70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입니다.

가진 것이 일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불어나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의 중력입니다.

20세기 중반 그 중력을 잠시 거슬렀던 것은 전쟁이라는 파국, 그리고 그 파국 위에서 만들어진 강한 정치적 의지였습니다.

AI는 그 중력을 더 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중력에 맞설 의지가 어디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확실히 말하지 못합니다.
 
 

기획·구성 : 김재형(jhkim03@ytn.co.kr)
제작 : 이형근(yihan3054@ytn.co.kr)
디자인 : 김현수(kimhs4364@ytn.co.kr)
참고 도서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자본과 이데올로기>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YTN digital 이형근 (yihan305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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