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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죽어야 하나요"...'읽씹' 당한 270억 청구서 [한방이슈]

한방이슈 2026.09.18 오후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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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만 사망 1천3백여 명, 실종 5천100여 명.

히말라야가 무너진 뒤 받아 든 참혹한 숫자입니다.

지난달 26일, 네팔 랑탕리룽 인근에서 대규모 빙하 붕괴와 암석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무너진 얼음과 바위가 렌데 콜라를 틀어막았고, 그 물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돌발홍수가 됐습니다.

급류는 보테코시를 지나 트리술리강을 따라 72킬로미터를 휩쓸었습니다.

직간접 피해 인구만 약 160만 명. 전 국민의 5%를 웃돕니다.

네팔 정부가 집계한 물적 피해와 경제적 손실은 4,083억 루피, 우리 돈 약 3조 6천억 원.

재건에 필요한 돈은 7,233억 루피, 6조 원이 넘습니다. 네팔 국내총생산의 10분의 1에 해당합니다.

참혹한 재난 직후, 네팔 정부는 유엔을 향해 이른바 '기후 정의'라는 이례적이고 강경한 요구를 들고 나왔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르지 않은 전 지구적 위기, 다시 말해 기후변화로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있으니 '기후 정의'의 관점에서 2,000만 달러를 보상하라는 내용입니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을 제공한 나라들을 향해 공식 청구서를 날린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네팔,
그들은 왜 지금 전 세계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것일까요?

네팔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도 되지 않습니다.

전력의 대부분은 수력발전으로 만듭니다.

한마디로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온 나라입니다.

그러나 히말라야라는 위치가 네팔을 가장 먼저 무너뜨렸습니다.
아프가니스탄부터 인도, 중국, 네팔까지 걸쳐 있는 힌두쿠시 히말라야 산맥.

2011년부터 10년간 이 지역의 얼음이 녹은 속도는 직전 10년보다 65% 빨라졌습니다.

네팔의 빙하는 30여 년 사이 전체 얼음의 3분의 1 가까이를 잃었습니다.

녹은 물은 사라지지 않고 산 위에 고여 호수가 됩니다.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와 유엔개발계획은 네팔의 코시, 간다키, 카르날리 세 개 유역에서 잠재적으로 위험한 빙하호 47곳을 지정했습니다.

네팔에 21곳, 중국 티베트에 25곳, 인도에 1곳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터진 호수는 이 목록에 없었습니다.

애초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날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호수이기 때문입니다.

8월 26일 아침, 무너져 내린 얼음과 바위가 계곡을 막으면서 호수가 만들어졌고,

그 호수는 몇 시간 만에 붕괴했습니다.

감시 대상 47곳을 지켜보는 사이, 목록 바깥에서 재앙이 시작된 겁니다.

네팔 정부는 이번 재난을 기후변화가 빙하 손실을 가속화한 여파로 규정했습니다.

탄소를 뿜어내며 돈을 번 것은 대형 산업국가들인데, 그로 인해 무너진 히말라야는 네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습니다.

물론 단일 재난 하나를 온난화 탓으로 100% 돌리는 데는 과학적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히말라야의 급경사 지형과 지질 불안정성도 붕괴의 원인이 됩니다.

네팔 재무부와 환경부는 유엔의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에 2천만 달러를 공식 요청했습니다.

원조가 아니라 기후배상금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기서 배상이라는 단어 선택이 핵심입니다.

원조는 주는 쪽의 선의입니다. 배상은 받는 쪽의 권리입니다. 다시 말해 주는 쪽의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네팔이 근거로 삼는 것은 2025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 ICJ의 권고적 의견입니다.

국제 기후 의무를 어겨 중대한 기후 피해를 입힌 국가는 금전적 보상을 포함한 완전한 배상을 해야 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ICJ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갔습니다.

화석연료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은 물론, 탐사를 허가하거나 보조금을 주는 행위까지도 국가가 방치할 경우 국제위법행위가 될 수 있다고 못 박았습니다.

기업의 책임을 직접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기업을 규제하지 않은 국가에 책임을 묻는 길을 연 겁니다.

그래서 2천만 달러는 '배상'이라는 단어를 국제 문서에 처음으로 새겨 넣기 위한 최소 단위의 시험대인 셈입니다.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엔의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은 27개 공여 주체로부터 8억 2,200만 달러를 약속받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온 돈은 4억 8,500만 달러, 약속액의 60% 남짓에 그칩니다.

여기서 실제로 배분할 수 있는 시범단계 예산은 2억 5천만 달러뿐입니다.

그리고 블룸버그를 비롯한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기금은 단 한 나라에도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네팔 사태 이전까지 접수된 신청은 176건, 총 28억 달러 규모. 쓸 수 있는 돈의 11배를 넘습니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은 왜 지갑을 닫고 있을까요? 선례 때문입니다.

네팔에 배상금을 지급하는 순간,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잠기는 투발루와 몰디브를 비롯한 수많은 나라의 요구가 뒤따라올 수 있습니다.

한 번 인정된 법적 책임은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기후 취약국들은 법적 성격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반면,

미국과 중국, 인도 등 주요 배출국은 법적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며 자발적 지원 형태만 주장하고 있습니다.

돈에 붙일 이름을 두고 평행선이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 지점에서 짚어야 할 불편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네팔의 빙하를 가장 가까이서 녹이고 있는 두 나라는 이웃 중국과 인도입니다. 현재 배출량 1위와 3위 국가입니다.

하지만 기후 협상 체계에서는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의무적 공여 대상의 바깥에 서 있습니다.

'선진국 대 개도국'이라는 낡은 구도에 갇히면, 네팔의 배상 청구는 가장 가까운 배출원을 비껴가게 됩니다.

기후 정의 논쟁이 구호에서 실제 집행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네팔 내부를 향한 지적도 나옵니다.

국제사회에 기후 정의를 외치기에 앞서, 무분별한 산지 개발과 부실한 재난 대응 예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입니다.

네팔 현지 기후 전문가들은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난개발을 방치하면서 국제사회에 돈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자국 안의 정의가 먼저 서야 기후 정의도 완성된다는 지적입니다.

네팔이 요구한 2천만 달러는 기후 재난의 비용을 누가 지불하는지,

그 답을 국제 문서에 처음 기록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지금 기록을 남기지 않는 쪽을 택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태가 유지되는 한, 다음 빙하호가 터졌을 때도 피해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은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힌두쿠시 히말라야 전역에는 위험하다고 분류된 빙하호가 약 200곳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무너진 곳은 그 목록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세어둔 숫자 바깥에서, 히말라야는 이미 무너지고 있습니다.

대자연이 보낸 참혹한 경고를 우리는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요?

자료: 로이터, 블룸버그, AP, 네팔 국가재난위험감축관리청(NDRRMA), ICIMOD, UNDP, ICJ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YTN 장동욱 (dwjang@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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