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군이 독자 개발한 극초음속 무기를 처음으로 시험 발사했습니다.
음속의 다섯 배 이상으로 비행하면서 궤도를 바꿀 수 있는 극초음속 활공비행체입니다.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돼 온 개발 사업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시험 현장을 직접 참관했습니다.
시험 발사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닷새 전 발생한 북한의 동향 때문입니다.
북한 역시 우리처럼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를 지켜봤습니다.
남북 정상이 같은 주에 극초음속 무기 시험을 참관한 것입니다.
우리 군의 이번 시험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한미 연합훈련 축소와 정부의 '자주국방' 기조를 함께 놓고 보면,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사라진 300km…북한이 던진 도발의 정체
먼저 북한의 발사부터 보겠습니다.
지난 3일 아침 6시 반, 원산 일대에서 탄도미사일 한 발이 동해로 날아갔습니다.
북한은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주장했고, 김정은은 딸 주애와 함께 발사를 지켜봤습니다.
다음 날, 북한은 이례적으로 미사일이 떨어진 지점의 좌표를 공개했습니다.
이유는 숫자 싸움에 있었습니다.
북한 미사일의 사거리와 관련 우리 합동참모본부는 700km 이상, 일본 방위성은 약 680km라고 분석했습니다.
반면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000km 떨어진 목표를 명중했다고 전했습니다.
같은 미사일을 두고 한국과 일본은 700km 안팎, 북한은 1,000km라고 주장한 겁니다.
차이는 약 300km.
김여정은 극초음속 미사일이 파도 모양 궤도로 날았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끝까지 쫓지 못했다고 조롱했습니다.
북한이 한·미·일의 탐지 능력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북한 주장이 맞다면 극초음속 미사일은 마지막 300km를 레이더가 보지 못하는 그늘 속에서 날아간 셈입니다.
물론 북한 주장을 그대로 믿을 근거는 없습니다.
국방부는 발사 직후부터 탐지하고 추적했으며 한미 미사일 방어 자산으로 요격할 수 있는 범위라고 밝혔습니다.
공개된 사진과 설명만으로는 북한의 미사일이 극초음속의 기준인 마하 5를 넘었는지, 활공 기동을 했는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비밀이었던 무기…한국은 왜 지금 꺼냈나
닷새 뒤, 충남 태안 앞바다.
바지선 위에서 미사일 한 발이 하늘로 솟았습니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무기 자체보다 무기의 존재가 그동안 비밀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극초음속 활공비행체 사업을 공개하지 않은 채 진행해 왔습니다.
극초음속 활공비행체(HGV) 비행 방식은 이렇습니다.
부스터가 상층 대기까지 밀어 올린 뒤 목표 고도에서 분리됩니다.
이후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낮은 고도로 활공하며 상하·좌우로 불규칙하게 기동하며 목표물에 명중합니다.
이번 시험에서 처음 검증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수천 도의 열을 견디는 소재, 목표를 찾아가는 유도·제어 능력, 낮은 고도에서 궤도를 바꾸는 비행입니다.
앞서 설명한 '레이더의 그늘'을 이제 우리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청와대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비행 궤적과 압도적인 비행속도로 유사시 주요 전략 목표를 기습적으로 제압하여 전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전략 자산"
'기습'과 '제압', 그리고 '전장의 판도'라는 단어가 정부 공식 문서에 나란히 실렸습니다.
하루 뒤인 9일 오후, 청와대는 사진 50장을 추가로 공개했습니다.
활공비행체가 목표 고도로 상승하는 장면과 불규칙 활공 비행을 마치고 목표점에 탄착하는 장면, 그리고 탄착 직전 활공비행체의 실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제원은 여전히 비공개인데, 탄착 직전 비행체의 실물은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보안 검토를 거치느라 하루 늦어졌다는 설명이지만, 숨겨 온 무기의 모습을 이틀에 걸쳐 단계적으로 보여준 셈입니다.
왜 지금일까요?
시점을 보면 답이 보입니다.
지난달 21일, 비무장지대 서부전선에서 지뢰가 터졌습니다.
우리 장병 3명이 다쳤고 2명은 중상입니다.
군은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남쪽에 묻은 지뢰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정전협정 위반 도발로 규정했고 상응 조치를 예고했습니다.
이번 공개가 그 답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런데 발표문을 읽어 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북한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무기는 공개하되 상대는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힘은 보여주고 긴장은 관리하겠다는 계산으로 읽힙니다.
그렇다면 이 무기가 겨냥한 곳은 어디일까요?
두 달 전의 결정…'스스로의 힘'이 나온 배경
시계를 두 달 전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지난 8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은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한미 연합 훈련을 대폭 줄이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하는 가장 큰 연례 훈련이 일주일 일찍 끝났습니다.
그 뒤 서울에서 나온 말들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9월 22일, 첫 국산 전투기 KF-21이 공군에 정식 인도됐습니다.
9월 29일, 국무회의에서 핵추진잠수함 특별법이 통과됐습니다.
같은 날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재명 / 대통령 (9월 29일 국무회의) : 무엇보다 자주국방의 핵심 열쇠인 핵잠수함 건조와 극초음속 미사일 등 미사일 기술의 첨단화에 더욱 속도를 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 극초음속 시험장에서 또 한 번 말했습니다.
[이재명 / 대통령 : 가장 높은 수준의 안보는 평화이기는 하지만 그 평화를 지키는 힘도 역시 강력한 억지력, 국방력에서 나옵니다.]
전투기, 핵잠수함, 극초음속 무기.
이 모든 것은 한 단어로 수렴됩니다.
바로 자주국방입니다.
이번 시험이 북한만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미국이라는 동맹이 비운 자리를 스스로 채울 수 있는지, 그 첫 시험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해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극초음속 무기 한 종류가 미국의 핵우산, 즉 확장억제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미 국방부도 훈련 규모를 줄였을 뿐 대비태세에는 차질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첫 비행과 실전 사이…빨라지는 무기, 짧아지는 시간
그렇다면 한국은 극초음속 미사일 경쟁에서 어디쯤 와 있을까요?
출발은 늦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7년 전에 이미 실전 배치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중국은 2019년 열병식에서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17을 공개했고 러시아는 같은 해 아방가르드를 실전에 배치했습니다.
뒤를 이어 한국과 일본, 북한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국내 전문가들은 북한의 극초음속 기술을 미국·중국·러시아의 40~50% 수준으로 봅니다.
탄두를 목표까지 유도하는 기술과 열을 막는 기술이 아직 미완성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은 바로 그 두 기술을 이번에 처음 검증했습니다.
첫 비행은 성공했지만 공개되지 않은 것이 더 많습니다.
언제 실전에 배치할지도 미지수입니다.
극초음속 무기는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을 거의 주지 않습니다.
남과 북이 둘 다 이 무기를 갖게 되면, 위기가 닥쳤을 때 서로 생각할 시간이 사라집니다.
작은 오판 하나가 곧바로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닷새 간격으로 이뤄진 남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의 억지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는 데서, 먼저 보여주는 쪽으로 무게가 옮겨 가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새로운 무기를 넘어 동맹이 비운 자리를 스스로 채우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기도 합니다.
동맹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우겠다는 선택은 공짜가 아닙니다.
돈과 시간이 들고 무엇보다 한반도의 긴장이 한 단계 올라가는 결과를 함께 가져옵니다.
빨라진 것은 미사일만이 아닙니다.
한반도의 위기가 다가오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지고 있습니다.
기획·구성 : 김재형(jhkim03@ytn.co.kr)
제작 : 이형근(yihan3054@ytn.co.kr)
그래픽 : 강소윤(kyeongwaryu@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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