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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년째 지키지 못한 유언, 안중근 유해 돌아올까?

2015.09.07 오후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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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준형, YTN 국제부 기자

[앵커]
하얼빈 공원에 내 뼈를 묻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조국에 묻어달라라는 것이 안중근 의사의 유언이었습니다. 105년이 흘렀지만 이 유언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 YTN이 광복 70주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서 특별기획 3부작을 방송했습니다. 이 특별기획을 취재한 전준형 기자 초대했습니다. 어서오세요. 수고 많았습니다.

우선 시청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왜 지금까지 유해를 찾지 못한 것인지 원론부터 다시 한 번 설명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기자]
당시 일본이 안중근 의사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뒤 유해도 돌려주지 않고, 기록도 제대로 남기지 않은 채 임의로 매장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중국 하얼빈역에서 조선 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이듬해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한 달 뒤인 3월 26일 사형이 집행되면서 순국하셨습니다. 사형 집행은 이토 히로부미가 숨진 시각하고 같은 시각인 오전 10시 15분에 맞춰 진행됐고요. 당일 오후에 안중근 의사의 두 동생이 유해를 찾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뤼순 감옥 측은 공안상의 이유라면서 안 의사의 유해를 돌려주지 않고, 임의로 매장해버렸습니다.

당시 일제의 감옥법을 봐도 사망자의 친척이나 친구가 요청하면 언제라도 유해를 내주도록 돼 있지만, 법까지 어겨가며 유해를 숨긴 겁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첩보 내용을 보면,재미있는 내용이 있는데요. 일본은 안중근 의사가 사망한 뒤 유언대로 하얼빈 공원에 묻히게 되면 하얼빈이 한인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특히 일본은 패전할 때 전쟁 범죄를 감추기 위해 군과 관련된 자료를 모두 불태워버렸는데요. 이 때문에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어디에 매장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가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앵커]
그 뒤에 유해를 찾기 위한 노력이 그동안 진행은 됐었던 것이죠?

[기자]
물론 여러 차례 관련 사업이 진행됐습니다.일단 먼저 광복 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인사들이 귀국하면서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유해 를 찾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을 진행했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그 중심에 있었는데요.김구 선상이 암살 되면서 이 사업이 중단됐고요. 2000년 들어서면서 그 상황이 급진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안중근 의사가 숨진 감옥소장의 딸 이마이 하소코라는 분이 이 사진이 안중근 의사가 숨진 이듬해 사진인데요. 당시에 이마이 하소코 씨가 안중근 의사의 시신을 감독 뒤편으로 운반하는 것을 봤다. 그리고 이 뒷편이 매장지라고 했습니다. 관련 사진을 보면 간부들이 모두 모여서 사진을 찍었고요.

그 바로 뒤에 특정 표시가 되어 있는데요. 이곳이 바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 추정지다. 우리 정부는 이 사진을 토대로 북한에 협조 요청을 해 2008년에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깨진 그릇 조각만 몇 점 발굴했을 뿐 사람의 유해로 추정할 만한 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정부가 시도한 처음이자 마지막 발굴 작업이었고, 이후에는 지금까지 7년간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입니다.

[앵커]
지금 저 사진을 보면 당시 감옥장의 딸이 보관하고 있었던 사진인 거죠? 저 빨간색으로 표시된 곳이 추정됐던 지역인가요?

[기자]
맞습니다.

[앵커]
우리 정부가 시도했던 건 실패했고. 그다음에 중국 정부가 또 독자적으로 한번 발굴을 시도 했다고요?

[기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요. 지난 2008년 우리 정부가 실패하고 돌아간 뒤두 달 만에 중국이 독자적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나선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한번 보시죠. 국내 언론 가운데에는 YTN이 단독으로당시 발굴 영상을 확보했는데요. 중국 다롄 시 근대사연구소가 발굴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진이 당시 우리 정부가 발굴했던 지역과 중국의 발굴지역을 비교하는 사진인데요.

우리 정부가 발굴했던 지역이 당시 우리 정부는 뤼순감옥소장의 딸이 소장하고 있던 사진 배경의 산과 건물 각도를 계산해 유해 매장 추정지를 찾았는데요. 배경에 보이는 산의 각도라든가 건물의 각도를 토대로 발굴지역을 선택을 했는데 중국 측은 우리 정부와 똑같은 사진을 근거로 다른 곳을 발굴 지역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발굴지역이랑 달랐고요. 배경을 보면 예전 뤼순 감옥 소장의 딸의 사진과 배경각도가 상당히 비슷합니다.

[앵커]
중국이 발굴한 지역은 저 사진에서 어디인가요?

[기자]
지금 사진을 찍은 지역, 저 뒤편에 보시면 발굴 추정지가 있지 않습니까? 저 지역에서 배경을 향해서 같은 방향으로 사진을 찍은 겁니다. 그래서 산의 능선각도와 거의 비슷하고요.

중국측은 저 지역을 우리나라가 발굴했던 지역이 아니라 거기에서 1km 정도 떨어진 다른 지역을 유해매장 추정지로 예상해서 발굴작업을 한 겁니다. 당시에 현지 주민이 오래 전 그곳에서 안중근 의사의 제사를 지냈다는 이런 증언도 있었고요.

특히 중국은 우리 정부가 발굴했던 지역에 대해서는 이미 유해매장 추정지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독자적인 발굴 작업에서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앵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했던 것도 아니고 중국에서 작업을 했을 때도 안 나왔고. 그러면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 것인가요?

[기자]
사실 꼭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전문가들이 오래 전부터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 곳은 두 차례 발굴지역이 아니고요. 뤼순 감옥의 공공묘지를 유력한 유해 매장 추정지로 지목해 왔습니다.

이게 단순한 설에 근거한 게 아니라 일본 당국의 공식 자료가 있기 때문인데요.당시 공식 자료 문서를 보시면 이 자료가 일본이 중국이 세운 관동도독부가 본국에 보고한 내용입니다. 이 서신에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 뒤 유해를 뤼순 현지에 매장했다고 돼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구체적인 자료가 바로 안중근 의사 통역관 소노키가 작성한 '사형집행시말보고서'인데요. 이 보고서를 보면 "오후 1시에 안중근을 뤼순 감옥 묘지에 묻었다"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가 안중근 의사 매장 위치와 관련해 지금까지 발견된 거의 유일한 일본 공식 자료입니다. 이 보고서에 언급된 묘지는 전체 면적이 2천 제곱미터 정도로, 1900년대 초반부터 1940년대까지 감옥 묘지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십 년 전 이곳에서 안중근 의사의 묘지를 찾아 제사를 지냈다는 증언도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아까 일제가 관련 자료를 불태웠다고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 공식자료가 나온 것이군요. 그런데 시간이 워낙 105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유해가 지금 발굴을 하더라도 보존이 되어 있을까 하는 그런 우려도 있지 않습니까?

[기자]
네, 그 부분에 대한 우려도 사실 큰 상황입니다. 사람의 유해는 토질에 따라 오랜 기간 모습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수년 내에 흙으로 변해 없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특히 뤼순감옥 공공묘지도 여러 곳이 파헤쳐지거나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훼손된 곳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앵커]
그러니까 주변에 아파트가 있고 그 자체는 지금 묘지가 아니라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나요?

[기자]
아닙니다. 주변의 일부 아파트로 개발이 된 곳도 있고요. 과거에 밭으로 일궈진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특히 다행스러운 점은 전문가들이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만약에 매장되어 있다면 사람의 힘으로 인위적으로 훼손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이렇게 지금 주장하고 있습니다. 근거가 있는데요.

지금까지 감옥묘지에 매장된 유해들은 대부분 통관위이라는 곳에 매장이 되었습니다. 통관이라는 게 일본의 전통적인 매장 방식으로, 유해를 앉은 모습으로 구겨서 대나무 통에 넣어 매장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특별 제작된 사각 형태의 침관에 매장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일본군에게도 안중근 의사는 특별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통관이 아니라 특별제작된 침관에 매장된 것 같고요. 이렇게 누운 모습으로 매장된 유해는 지금까지 이곳에서 한 차례도 발견된 사례가 없다고 합니다. 특히 전문가들은 특히 공공묘지 내에서도 전문가들이 지목하는 안중근 의사 매장 추정지 주변은 다행히 지금까지 한 번도 파헤쳐진 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만약에 발굴을 하게 되면 그때 공공묘지에 매장했던 유해는 유리병에 이름을 쓴 종이를 넣어서 목에 걸어뒀기 때문에 그것이라든가 또 안 의사가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로 식별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지금 공공묘지, 거기를 빨리 해 보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왜 지금 안 되는 겁니까?

[기자]
사실 관할지역이 중국 정부이지 않겠습니까? 사실 중국측에서는 확실한 근거자료가 없으면 이곳에 대해서 발줄작업을 할 수 없다는 이런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실 근거 자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북한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안중근 의사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입니다. 때문에 북한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원하고 있고 거기에 대해서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중국 입장에서는 이런 걸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고요. 실제로 지난 2008년에 우리 정부가 처음으로 발굴작업을 할 때도 남북이 공동으로 조사를 추진했었고 2008년 발굴작업 때도 북한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발굴 작업이 가능했습니다.

결국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해서는 남북 관계 개선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최근 남북이 정례적인 당국회담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이 자리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해 협의가 이뤄질지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남북이 합의를 해서 거기를 한번 같이 해 보자라고 하든지 아니면 합의를 해서 중국에 해 달라고 하든지 그렇게 하면 이뤄질 가능성이 남아있는 거군요.

[기자]
어찌됐든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을 좀더 추진을 하기 위해서 외교적인 문제들이 좀더 풀려야 하는 과제로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취재하느라 고생 많았고요. 전 기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105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안중근 의사의 유언이 이뤄졌으면 하는 그런 마음일 겁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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