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프로그램 개발자가 대기업에 자신의 '평생작품'을 도둑맞아 고소 5년 만에 어렵게 유죄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그런데 고작 벌금이 책임자 천만 원, 법인 5백만 원이었습니다.
한국 사법체계가 지식재산권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개발자는 호소하고 있는데요.
제보는 Y, 이준엽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지난 2011년 대기업 코오롱베니트와 프로그램 완제품 공급계약을 맺은 고 모 씨.
공급한 프로그램은 지난 1994년 저작권을 등록해 지금까지 업데이트해온 고 씨의 '평생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미들웨어'로, 데이터베이스와 응용프로그램이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허리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지난 2015년쯤 고 씨는 코오롱베니트가 자신의 미들웨어 환경 위에서 작동하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미들웨어까지 같이 팔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미들웨어는 자신의 작품을 베낀 물건이었습니다.
[고 모 씨 / 미들웨어 '심포니넷' 개발자 : 미들웨어라는 건 중간에 들어가는 거기 때문에 함부로 그렇게 바꿀 수가 없어요.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 해요. 그런데 (고 씨 미들웨어 기반을 둔) 응용프로그램 쪽은 전혀 변형을 안 하고 바꾼다고 그러니까 '어, 이거 얘네들이 완전 역공학을 한 거네?'라고 이제 그때 딱 감이 온 거죠.]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코오롱베니트가 자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미들웨어와 고 씨 프로그램을 비교했더니, 90% 이상 베껴서 만든 기능이 230개 이상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고 씨는 증거를 모아 고소했고 결국 코오롱베니트는 2017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하지만 코오롱베니트는 재판에서 '고 씨가 프로그램 일부 코드를 직접 줬다'는 주장을 펼쳤고 지난 2월까지 5년 동안 법적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저작권은 나에게 있으니 테스트용으로만 사용하라"라는 문구를 뺀 이메일을 '소스코드를 줬다는 증거'라면서 제출했다가 재판부에 꾸짖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허탈했습니다.
코오롱베니트의 저작권법 위반 혐의 1심 재판부는 법인에는 벌금 500만 원을, 책임자와 프로그램을 복제한 외부 업체 직원에는 벌금 천만 원씩을 각각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프로그램을 허락 없이 고쳐 쓴 건 잘못인데, 프로그램을 갖다 놓은 건 고 씨이기 때문에 탈취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고 씨 프로그램 환경 위에서 작업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도록 코오롱베니트 사무실에서 직접 개발을 도왔는데, 그때 갖다둔 소스코드를 '줬다'고 본 겁니다.
[고 모 씨 / 미들웨어 '심포니넷' 개발자 : 지적 재산권이라던가, 어떤 사기 사건이라던가,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다 죽이는. 이건 산업을 다 죽이는 일이에요, 이런 것들이. 그걸 못 막아준 사법이 저는 크게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은 코오롱베니트가 특별히 낮은 형량을 받은 건 아니라고 평가합니다.
저작권법 위반에 대해 한국 재판부 양형기준 자체가 워낙 약하다는 겁니다.
[이근우 /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 (한국 법원의) 양형기준으로 봤을 때는 정황이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례적으로 낮다고 보기는 좀 어렵고요.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양형 기준을 현실화할 필요는 있습니다.]
코오롱베니트는 고 씨에게 배상금 2천만 원 지급을 명령한 민사소송 결과를 따를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법원에서 인정한 복제권 침해는 일부분에 불과하고, 메일의 문장은 고의로 빠뜨린 게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저작권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불법 소프트웨어 복제는 완제품 업체는 물론 모든 도급업체 수입까지 금지할 수 있는 중대 혐의입니다.
YTN 이준엽입니다.
YTN 이준엽 (leejy@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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