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라디오 YTN]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22년 5월 21일 (토요일)
■ 진행 : 김양원 PD
■ 대담 : 김언경 뭉클 미디어인권연구소 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성비위' 논란으로 본 언론의 '젠더 보도' [미디어 리터러시]
- 윤재순 성비위 논란, 중계식 나열보도나 정치.선거공학적으로만 접근
- '젠더 갈등' 부각하는 대신 기자나 데스크의 성 인지 관점 성찰해야
◇ 김양원 PD(이하 김양원)> 한 주간 뉴스를 꼭꼭 씹어보는 시간, 미디어 비평입니다. 오늘은 김언경 뭉클 미디어 인권연구소장과 전화연결 되어있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언경 소장(이하 김언경)> 안녕하세요.
◇ 김양원> 요즘 정치권에 ‘성비위’라는 말이 연일 보도됐습니다. 언론을 통해 ‘성비위’ 논란을 일으킨 정치인과 고위직 인사가 연이어 등장했기 때문인데요. 성비위로 제명된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리고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입니다?
◆ 김언경> 네. 한 분은 일단 당에서 제명이 됐고요, 제가 이 사안을 짚어보려고 하는 이유부터 설명하고 싶은데요, 이 사안에 대한 보도는 단순히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안은 우리 언론이 성희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 김양원> 이번에 언론에 크게 보도됐던 것 중 하나가 윤 총무비서관이 쓴 시에요. 왜곡된 성 인식이 담겨 있다는 지적이었어요?
◆ 김언경> 윤재순 총무비서관이 2002년 '가야 할 길이라면'이라는 시집을 냈습니다. 여기에 실린 '전동차에서'라는 제목의 시에서는 지하철 성추행을 '사내아이들의 자유'로 표현한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MBC가 5월 17일에 이 시의 원문을 추가로 확인되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는데요. 2001년 비매품으로 펴낸 시집에서 성추행 장면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논란이 됐던 시와 똑같았는데, 시 제목 옆엔 '전철 칸의 묘미'라는 부제가 붙었고, 경향신문이 5월 16일 <“20년 전 세태 풍자”라는데...윤재순, 또 다른 지하철 시 “수컷들의 염정”>이라는 보도에서는 남성이 샌들 신은 여성을 밀어붙여 여성들이 도망가는 걸 묘사한 ‘길’이라는 시도 지적했습니다. 저는 이 두 시에서 모두 지하철 내 성희롱적인 행위를 자유, 염정 등으로 미화하는 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 김양원> 윤 비서관이 이런 왜곡된 성 인식 논란에 대해서 입장을 내놨죠?
◆ 김언경> 지난 17일 국회 운영위원회 자리에서 관련한 여야의 집중 질타가 쏟아지자 여기서 한 윤 비서관의 발언이 더 문제가 된 것인데요. 국민의힘 양금희 의원이 “오래된 일이 경미했다고 해도 새로운 정부의 중책인 만큼 숨김없이 설명하고 충분한 사과가 필요하다”면서 해명 기회를 주었는데요. 그런데, 윤 비서관이 과거 검찰 재직 시절 여성 직원이 윤 비서관의 볼에 뽀뽀를 하게 한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겁니다. 당시 생일빵이라며 (직원이) 생일 케이크를 (자신의) 얼굴에 던져서 (입고있던) “하얀 와이셔츠에 까만 초콜릿 케이크가 뒤범벅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 뒤 (그 직원이) “생일(선물) 뭐 해 줄까?”라고 하길래 화가 나서 ‘뽀뽀해 주라’라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직원이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해준거다. 이걸로 성 비위 징계처분을 받은 거다... 이렇게 말해 더 논란을 키운 셈이 된 거죠.
◇ 김양원> 네, 이런 일이 직장에서 장난처럼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분노하는 분들 분명히 있으실텐데...이 발언이 더 논란이 됐죠? 언론 보도는 어땠습니까?
◆ 김언경> 먼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하는 뉴스 빅데이터 빅카인즈에서 5.13.~16까지 윤재순을 언급한 보도는 총 241건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전동차에서’ 시 관련한 내용이 76건이었고, ‘성 비위’ 관련 보도가 117건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많이 보도되었다 싶지만, 이 117건의 대부분은 5월 16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발언이 나오면서 이를 중계한 것들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보도에 이준석이라는 키워드가 함께 있는 보도가 총 116건이나 되었거든요. 다시 말해서 보도 대부분이 단순 전달 및 중계 공방이었다는 것이죠. 즉, 윤재순 총무비서관 관련 논란 무엇인지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그냥 ‘논란’으로 중계하는 식의 보도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여야 정치인의 성 비위 논란을 나열 보도한 뒤 이준석 대표의 ‘사과하면 괜찮다’ 발언을 받아쓰는 형태의 KBS 5월 16일 보도 [‘성 비위’ 박완주 제명 의결…이준석 “윤재순 사과하고 업무해야”] 같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 김양원> 그럼 중계 보도가 아닌 의견 보도와 기조는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 김언경> 빅카인즈 기준으로 사설이 11건 나왔어요. 10건이 모두 비판적이었는데요. 한겨레, 서울신문, 동아일보, 경향신문, 세계일보, 한국일보, 서울경제가 비판적 사설을 냈고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안 냈습니다. 문화일보는 <윤 대통령은 협치 손 더 내밀고 거여는 발목잡기 끝내야>라는 제목의 5월 16일자 사설에서 관련 내용을 다뤘습니다. 문화일보 사설에서는 “당장 윤 대통령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 문제에서 더불어민주당 요구에 부응하고,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는데요. 정작 윤재순 비서관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 김양원> 5월 17일에 있었던 국회 운영위에서의 윤 비서관의 발언이 화제가 되면서 관련 보도도 많이 나왔죠?
◆ 김언경> 그래서 별도로 체크를 해봤는데요. 5.17 국회 운영위 ‘윤재순’을 언급한 보도는 184건이었지만, 이중에서 ‘뽀뽀’에 대한 해명을 다룬 것은 35건에 불과했습니다. 제목을 보면 국민일보의 17일자 보도 [윤재순 “국민 불쾌감 느꼈다면 사과”…억울함 호소하기도]처럼 윤 비서관의 억울함을 부각한 보도도 있고요. SBS의 <"화나서 뽀뽀해달라고 한 거다"…윤재순 사퇴 공세 계속>처럼 국회의 공방으로 처리한 것도 있고요. 동아일보 <윤재순 “생일빵에 화나서 뽀뽀 요구”…논란 더 키운 해명>처럼 논란이 더 커진 상황임을 분명히 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들 보도 중에서 ‘사퇴’ 언급은 52건에 불과했고, ‘사과’가 언급된 보도가 114건으로 훨씬 더 많기도 했습니다.
◇ 김양원> 자, 이렇게 중계식 보도들, 사설이나 의견보도에서도 정치적인 판가름으로만 귀결될 뿐 논란이 된 윤 비서관의 왜곡된 성 인식이나 성 비위로 인한 징계가 무엇이 문제였는지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는데... 어쨌든 이제 좀 일단락이 되어가는 모양새에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 김언경> 네, 보도가 많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번 사안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희롱적 농담, 성희롱 행태 등에 대해서 짚어야 할 사안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언론이 보다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순한 헤프닝으로 끝내거나, 여야 정쟁으로 윤 비서관 거취논의로만 좁혀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이슈가 보다 깊이 있게 보도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부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둘러싸고도 지나치게 단순하게 누군가의 말을 따라다니면서 보도하고, 이 공약이 선거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이런 관점으로 보도하면서, 우리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 수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 공약집에 여경혐오론을 대표하는 표현인 ‘오또케’가 등장했을 때에도 여성에 대한 혐오 표현에 대해서 깊이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기보다는 공방 위주로만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김양원> 여성가족부 폐지 문제도 그렇고, 윤재순 비서관 등 정치권에 등장한 성 비위 논란이 정치공학적, 선거공학적 관점에서만 보도되는 것...아무래도 언론이 이 사안을 이렇게만 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언론 스스로도 성평등 인식이 낮고, 내부적으로 이런 젠더문제에 대해 평가하고 분석하고, 내부 인력을 교육하는 시스템이 있을까 싶습니다.
◆ 김언경> 사실 언론 보도가 자체가 바뀌려면 당연히 언론사 내 조직문화도 바뀌고, 기자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 그리고 인권 패러다임으로 모든 보도를 검토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되어야 합니다.
미디어오늘이 5월 18일 보도한 <전문데스크부터 성평등센터까지...젠도조직 선도하는 언론사>에서는 KBS <성평등센터>, 한겨레 <젠더데스크>, 경향신문의 <젠더 소통데스크>, 한국일보와 서울신문의 젠더담당 기자, 서울신문의 <젠더연구소>와 젠더면, 부산일보의 젠더데스크, 국제신문의 젠더 담당 기자 등을 소개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KBS는 국내방송사 최초로 2018년 <성평등센터>를 조직했습니다. 성차별, 성희롱, 성폭력 피해를 구제하고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목적입니다.
◇ 김양원> KBS의 성평등센터....사내 조직문화에도 영향을 끼치겠지만 이런 조직문화가 보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 김언경>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사내 성폭력 사건 처리를 담당했지만, 최근 기자들과 협업하여 성인지적 관점에서 콘텐츠를 검토하는 역할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 1월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중계 전, 스포츠국의 요청으로 아나운서와 캐스터를 중심으로 성평등 중계에 대한 교육을 했고요. 4월에는 보도국과 함께 ‘성평등 라운드 테이블’을 개최해 대통령 선거 방송을 돌아보고 성비불균형 개선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한겨레는 2019년 5월 국내 언론사 최초로 젠더 데스크 신설했는데요. 2020년 11월에는 젠더팀이 신설되었습니다. 현재 이정연 기자가 젠더데스크와 젠더팀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젠더 데스크는 기사가 노출되기 전 젠더적 관점에서 부적절한 표현과 용어가 있는지 체크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요. 100% 모든 표현을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사후적으로 기자들에게 비판이 들어왔을 때 빠르게 피드백하고 수정합니다. 경향신문도 2021년 6월 젠더 소통데스크가 신설되었습니다. 한겨레와 경향 모두 의미있는 젠더 관련 보도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런 시스템의 변화가 큰 몫을 했을 것입니다.
한국일보와 서울신문에는 현재 젠더팀이 따로 없지만, 젠더 담당 기자가 있고요. 한국일보의 젠더 뉴스레터 허스토리가 발행되는 등 매우 유익한 실험들이 계속되었지요.
◇ 김양원> 숨가쁘게 돌아가는 보도국 일정 속에서 젠더 데스킹까지 가능할까...싶은데 한겨레 사례를 보면 가능하군요. 그런데, 아무래도 중앙언론사나 큰 조직은 이런 대응이 그나마 가능하지만 수많은 언론사들이 경영상 이유로, 또 적은 인력을 이유로 쉽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하거든요?
◆ 김언경> 네, 하지만 지역언론에서도 이런 성평등 조직을 신설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소개해드리면요, 부산일보는 2020년 11월 지역 언론으론 최초로 젠더 데스크 직을 신설했는데요. 편집국장 선거 과정에서 여기자회가 각 후보자에게 젠더 데스크 도입을 요구하고 약속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김효정 데스크는 1면부터 마지막까지의 모든 기사들을 확인하며 기사의 방향, 문장 등을 젠더적 관점에서 데스킹하고요. 젠더데스크가 국장에게 바로 논의하고, 해당 기자와 논의해 빠른 시간 내에 수정 보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 역할라고 합니다. 또한 수습기자 젠더교육도 담당하고 있다고 하네요. 국제신문은 2020년 11월부터 보건·환경 담당 기자에게 ‘젠더 담당’ 역할을 추가했다고 합니다. 인원이 적고, 조직이 작아도 의지를 갖고 추진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양원> 젠더 데스크 도입같은 조직의 신설 외에 언론이 제대로 된 성 인식 보도를 위해서 참고해야 할 만한 것이 있을까요?
◆ 김언경> 성평등 보도는 단순히 성희롱, 성폭력 관련한 보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늘 정치관련 보도에서 살펴봤듯이, 언론사들이 기자, 방송 진행자, 출연자, 취재원, 토론자, 칼럼 참여자 등에서 성별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해야 하며, 사진, 영상, 일러스트에서도 특정 성만 등장하지 않도록 점검해야 하고요. 보도 기획, 제작, 출고 전 과정에서 성인지적 관점을 점검해야 합니다. 혐오 표현과 이와 같은 사안에 대해서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신중하고 깊이 있게 보도해야 하고요. 성평등 논의를 ‘성 갈등’, ‘젠더 갈등’으로 치부하지 않고 언론사의 상업적 목적으로 ‘젠더 갈등’을 부각하고 이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언론사들이 여러 시스템을 마련하고, 보도 가이드라인을 점검하고, 교육하고, 자신들의 언론 보도들을 점검해보는 등의 노력이 보다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 김양원> 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언경> 감사합니다.
◇ 김양원> 지금까지 김언경 뭉클 미디어 인권연구소장이었습니다.
YTN 김양원 (kimyw@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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