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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죽인 건 엄흥도가 아니었다" 천만영화 '왕사남' 본 역사학자, 진실은

2026.03.09 오전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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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죽인 건 엄흥도가 아니었다" 천만영화 '왕사남' 본 역사학자,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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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6년 03월 09일 (월)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심용환 역사엔(N)교육연구소장(전화)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조선의 여섯 번째 왕 단종의 비극적인 생애를 그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의 고지를 넘었습니다. 1,100만을 넘어섰다고 하죠. 성군 세종의 손자이자 문종의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눈부신 정통성을 가졌던 소년. 하지만 열여섯 푸르른 나이에 삼촌에게 왕위를 뺏기고요. 머나먼 유배지 영월에서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비운의 왕으로 기억하는 단종의 삶과 그 역사적인 의미 또 그 죽음을 둘러싼 여러 기록들까지 역사학자와 짚어보겠습니다. 심용환 역사인 교육연구소장 전화 연결합니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 심용환 : 안녕하세요.

◆ 박귀빈 : 영화 보셨어요?

◇ 심용환 : 일찍 봤죠, 기회가 돼서 언론 시사회 때 봤습니다.

◆ 박귀빈 : 처음 보고 느낌이 어떠셨어요?

◇ 심용환 : 이렇게 잘될 줄 몰랐고요. 재밌게 봤는데, 경이로운 수치인 것 같고, 잘 된 것 같기도 하고요. 특히 젊은 친구들이 최근에 사극 볼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젊은 친구들한테도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앞으로 이런 꽤 정통 사극이니까 이런 것들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 박귀빈 : 영화 속의 인물들이 실제 사건 실제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보니까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고, 더 마음 깊이 가슴 아파하는 것 같습니다. 단종의 삶에 관심이 그만큼 커졌는데요.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정통성을 가진 왕이었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 심용환 : 뒤에 만들어진 이야기이긴 한데, 전무후무한 정통성이라는 건 결국은 장자 승계권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인데, 그 전에 예를 들면 이성계나 태종 이방원이나 세종 같은 경우가 다 첫째도 아니고, 결국은 싸움과 권력 투쟁을 통해서 권력을 장악했는데, 그에 비해서 세종의 아들이었던 문종 또 문종의 아들이었던 단종이 장자 승계로 내려오니까 유교 국가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계승의 권력을 갖고 있는 거죠. 그런데 중요한 건 조선 전기만 하더라도 유교 국가이긴 하지만, 유교적인 이상 자체가 완전히 몸에 다 베이지는 않은 상태여서 세월이 지나서는 장자 승계권을 가졌는데 안 됐다고 말을 하지만 그만큼 조선 전기만 하더라도 굉장히 권력도 있어야 되고, 왕으로서 문벌의 힘도 있어야 되고 그랬던 시대. 만약 단종이 조선 후기 때 태어났으면 아주 눈부시게 편안하게 왕이 돼서 권력을 운용했을 걸로 추정이 됩니다.

◆ 박귀빈 : 그런가요? 삼촌인 수양대군 세조에 의해서 왕위에서 쫓겨나게 되는데, 그 사건이 계유정난입니다. 1453년이더라고요. 그리고 단종 1년 때라고 나오던데 그러면 단종이 몇 살 때였던 거예요?

◇ 심용환 : 나이 계산이 요즘에 복잡해지기는 했는데, 통상 12-13살 얘기를 하죠. 굉장히 어린 나이고요. 앞에 있었던 아버지 문종이 일찍 돌아가셨고, 또 엄마는 단종을 낳다가 죽었고, 조금 더 복잡한 얘기긴 하지만 문종이 중전과의 관계가 계속 안 좋아서 이혼을 하고 이런 과정들이 있어서 후궁하고 또 애를 낳고, 가문도 별로 안 좋고, 할머니 할아버지 다 돌아가신 상태여서 외로울 수밖에 없었죠. 오죽하면 김종서라든지 세종의 측근들이 지켜주고 있었고, 사실은 수양대군이 지켜줘야 되는 사람이거든요.

◆ 박귀빈 : 그렇죠.

◇ 심용환 : 삼촌이기도 하고, 둘째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이죠. 셋째였던 안평대군은 단종을 잘 보위했는데, 셋째만이 아니라 대부분 다 보위했는데 수양대군. 가장 지켜줘야 될 사람이 뒤통수를 완전히 때린 거니까, 이번 작품은 수양대군이 안 나오잖아요. 오히려 안 나오니까 더 그 힘이 느껴진다고 해야 되나? 그런 답답함이 있습니다.

◆ 박귀빈 : 왕실 안에서 단종을 지켜줄 만한 어른이 앞서 말씀하셨지만 문종의 세력들, 김종서라든가 그리고 수양대금만 그랬지 다른 삼촌들도 있었고, 어떻게 그렇게 허무하게 권력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나?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해요.

◇ 심용환 : 당시 기록들을 살펴보게 되면 그렇게까지 큰 의심을 안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김종서라든지 안평대군 같은 사람들이 ‘설마 수양대군?’ 거의 이런 입장이었던 것 같고요. 반대편에서 수양대군이나 한명회는 아주 조직적으로 움직였었기 때문에, 참 뒤통수 맞은 격. 어찌 됐건 김종서나 이런 사람들은 수양대군의 위험성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조직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공격하고에 대한 예상은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단종이 지금 보면 초등학생인 건데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 심용환 : 그때는 그게 초등학생으로 보시면 큰일 나고요. 왜냐하면 조선 후기이긴 하지만 숙종 이런 사람들 보면 한 15-16살 되면 직위를 하거든요. 그래서 국가 운영을 잘합니다. 국가라는 게 시스템적으로 운영이 되기도 하고 예전에는 평균 수명이 많이 낮았기 때문에 한 10대 중반, 물론 20살이 넘어야 정식 성년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10대 중후반이 됐었을 때는 보통 구강 통치를 하는 거기 때문에, 누누이 말씀드리는 거지만 한 2-3년 한 3-4년만 옆에서 단종을 보위했으면 국정 운영을 잘했겠죠. 그거를 완전히 거꾸로 생각해서 빼버린 거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애를 저렇게 공격하냐고 얘기하지만, 몇 년만 옆에서 도와줬으면 굉장히 태평성대가 이어졌다고 해야 되나요? 아쉽고 속상합니다.

◆ 박귀빈 :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안 되고 생각해 보니까 그 당시에 일단 왕이 될 사람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다른 방식으로 했을 것이고 하긴 10대 때 결혼들을 했네요?

◇ 심용환 : 그렇죠.

◆ 박귀빈 : 지금처럼 어린아이가 아이고 안 됐다 이렇게 보기에는 완전히 권력 싸움이라고 봐야 되는 게 맞네요.

◇ 심용환 : 맞습니다. 어찌 됐건 장항준 감독이 기가 막히게 만든 거죠. 오늘날 우리의 시각에 맞춰서 사람들한테 감정을 호소한 건데, 반대편에서 그때 그 역사는 어땠는가는 또 별도로 냉정하게 볼 필요는 있습니다.

◆ 박귀빈 : 그러면 삼촌 수양대군 세조 같은 경우는 앞서 ‘뒤통수를 맞았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표현을 하셨는데, 언제부터 왕권에 관한 꿈을 꿨을까요? 역사적으로 짚을 수 있나요?

◇ 심용환 : 정확하게 언제부터 왕권에 대한 꿈을 꿨는지 모르겠지만, 약간의 세종의 책임도 있습니다. 보통은 종친, 왕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은 정치에 참여하면 안 되는데, 세종 본인이 셋째 출신이고 하니까 많이 허함을 느꼈는지 국가 운영하던 시절에 수양대군이나 안평대군을 많이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한글 창제도 하고 일을 많이 시켰어요. 그래서 그런 것 때문에 권력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 않았는가가 추정이 되고, 그러고 나서 문종 집권 때 즉, 자기 형이 집권할 때 보면 되게 어수룩하긴 하더라도 굉장히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실력이 나오기 때문에,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권력욕이 있지 않았나,특히, 형이 죽은 다음부터는 이건 기회라고 확실히 여겼던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단종은 왕을 왕 통치한 기간이 굉장히 짧았고, 어린 나이에 삼촌한테 왕권을 뺏기고 유배지 가서 목숨을 잃게 됐는데, 그 짧은 동안의 서사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가슴에 남게 되거든요.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 심용환 : 두 가지 이유인데요. 하나는 단종이 굉장히 조명되던 게 일제강점기입니다. 김동인이나 이광수 같은 유명한 문인들이 그에 대한 글을 썼고요. 그래서 아예 반대편에서 김동인 같은 경우는 유약한 왕은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갔었던 수양대군의 편을 들었던 소설을 썼고, 이광수 같은 경우는 너무 불쌍하다 하면서 단종애사라는 글을 썼기 때문에 최근에 단종애사 소설이 다시 팔린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기본적인 것은 일제강점기 때 유약한 국왕과 혹은 유약한 나라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환기된 것 같고, 조선으로 가게 되면 조선 전기 때 이미 중종 때가 되고 나면 결국 단종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등장합니다. 결국은 국왕을 몰아냈잖아요. 그래서 그전에 있었던 이방원이 권력을 장악하고 하는 것들은 결국 정도전을 죽이긴 했지만 이성계를 죽이거나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조선 최초로 유교 국가에서 왕을 몰아내고 왕이 된 사람이기 때문에, 굉장히 큰 스캔들이죠. 그래서 굉장히 위험했던 시기지만 그때부터 이미 단종과 관련된 기록들이 많이 등장을 하게 됩니다.

◆ 박귀빈 :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가서 거기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지금까지도 조금 쟁점이 되고 있다고 그래요.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두고 기록마다도 조금 다르다고 하던데 공식적인 기록은 어떻게 돼 있나요?

◇ 심용환 : 공식적인 기록이라고 하면 실록을 얘기하는데, 실록에 자세히 안 나옵니다. 실록은 그냥 ‘단종이 졸하니, 예로써 장사 지냈다’ 이렇게만 나옵니다. 워낙 큰 사건이니까 실록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정확한 표현을 하고 있지는 않고요. 하지만 남겨져 있는 양반들이 썼던 모든 문인 기록들은 조선 전기든, 후기든 다 ‘단종을 모시는 사람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나오고 있고 하지만 조선 후기에 나오는 설화에는 단종이 스스로 목을 맸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결국은 쫓겨난 왕을 어떻게 제거하느냐의 부분에서 신록은 침묵했고, 사대부들은 왕이 죽였다기보다는 결국은 사람을 모시는 일계의 하층민 사람, 엄흥도가 아니거든요. 죽인 사람은 기록에는. 그래서 그 사람이 죽였다고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 거고, 민중들 입장에서는 단종이 불쌍하니까 진짜 더러운 세상 하면서 스스로 목을 맸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 박귀빈 : 더 역사에 가까운 해석은 뭐라고 보시는 거예요?

◇ 심용환 : 일단 세조가 죽인 거 아닙니까? 이건 누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니까 죽인 건 다 아는 건데 다만 그것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들인 거죠. 그래서 나는 돌아가셨으니까 그냥 제사 지내줬어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너무 불쌍하지만 왕의 죄는 아니야 라든지 그래서 아마 민중의 기록들이 가장 솔직한 부분이 있는 거죠. 너무너무 단종이 불쌍하다 이런 얘기 정도니까요.

◆ 박귀빈 : 당시 세조가 단종이 죽고 나서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 이런 엄명을 내렸다고 전해집니다. 영화의 주인공 엄흥도가 실제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사를 치는 걸로 기록이 되어 있는 거죠?

◇ 심용환 : 굉장히 얘기가 천만이 넘다 보니까, 얘기가 계속 부풀어가서 이런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시신을 처리한 자는 3족을 멸한다 이런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 기록은 없고, 왜 멸하겠습니까? 다만 주변 사람들이 쫓겨난 왕의 죽음을 보니까 그의 시신을 함부로 손을 못 댄 거죠. 그런데 누군가가 처리를 했는데, 조선 전기 때는 엄흥도가 처리했다 이런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지 않고요. 조선 후기 숙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엄흥도가 했다, 엄흥도가 그걸 해놓고 나서 굉장히 도망 다녔고, 모든 일을 포기했다’ 이렇게 기록이 나옵니다. 드라마에서는 너무나 따뜻한 사람으로 나오는데, 일단 첫째, 단종을 죽였던 사람은 엄흥도가 아니고 그건 장항준 감독의 상상력이고, 엄흥도가 뒷수습을 했다는 부분이 굉장히 자세하게 나온 건, 조선 후기 때 유교 문화가 강화가 되고 숙종이나 영조, 정조가 왕권을 강화시키면서 ‘봐라 이렇게 국가에, 왕을 위해서 헌신한다’ 이걸 강조하기 위해서 만든 레토릭입니다. 그게 오늘 우리 시대에 굉장히 외롭고 힘들잖아요. 어려운 시대 때 장항준 감독이 이걸 또 약간 비틀어서 단종을 우리의 힘든 마음과 등치시킨다든지 우리의 힘든 마음을 위로시킨다라든지 재해석을 한 거기 때문에, 나눠서 접근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 박귀빈 : 공식 기록에 조선 후기에 와서 엄흥도라는 인물이 등장을 하고, 기록 속에 그 사람이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나오는데, 그럼 기록에 이런 것도 있어요?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먹고 중대한 결단을 내렸는지에 대한 것도 붙어 있습니까? 왜냐하면 그것 자체가 흐름을 만들어내는 그 의도일 수 있으니까요.

◇ 심용환 : 공식 기록에는 실록에 많이 나와요. 조선 전기에 아예 없고, 숙종 때 시작돼서 영조 특히 정조 때 되게 많이 나옵니다. 그 내용이 지금처럼 그 왕을 측근히 여기고 이런 게 아니라, 봐라 이렇게 충성했고 군주를 모셨으니 훌륭하다는 식으로 표현이 되는 거죠. 이거는 우리가 보는 영화가 틀렸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감수성이 그때와 달랐다는 거고, 조선 후기 때 엄흥도가 확 떴던 이유는 오늘 우리가 느낀 감정과는 다르게 국가적으로 이 사람을 정말 충절 어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정치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행위라는 것도 알고 보시면 실망이 되실까요?

◆ 박귀빈 : 아닙니다.

◇ 심용환 : 맨날 제가 이런 얘기하니까 자꾸 혼나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왜 자꾸 그렇게 해서 분위기 깨냐고 얘기하는데, 그러면서 역사도 알고 감독님의 창의성도 알고 보는 게 정상적인 관람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 박귀빈 : 맞습니다. 영화는 영화대로 즐기면서, 영화 속에 나온 그 사건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것도 굉장히 큰 의미인 거니까. 그런 의미로 오늘도 소장님을 연결해서 짚어보는 거고요. 영화 흥행 이후에 단종의 유배지 영월을 찾는 사람이 굉장히 많이 늘었다 그래요.

◇ 심용환 : 줄 서서 기다리시던데요. 겨울에 가서 그렇게 볼 게 없는데 날씨 좋을 때 가야 되는데요.

◆ 박귀빈 : 볼 게 없어요? 왜요? 거기 역사적인 유적지가 많잖아요.

◇ 심용환 : 이것도 굉장히 영화를 본 분들 흥분하실텐데.

◆ 박귀빈 : 청룡포 봐야죠.

◇ 심용환 : 그렇죠. 나쁘다는 게 아니라 초봄이나 가을에 가면 정말 예쁘거든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자주 가는데, 계절상 지금을 추천하진 않죠. 겨울에 대부분 다 그렇지 않습니까? 영화 열기가 뜨거우니까 사람들이 막 줄 서서 가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 박귀빈 : 그럼 몇 월에 가는 게 가장 좋을까요? 영월은

◇ 심용환 : 5-6월에 되게 날씨 좋을 때나 아니면 가을에 가면 좋고, 한여름에 진짜 더울 때 가도 너무 멋있습니다. 햇빛이 뜨겁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멋있어요.

◆ 박귀빈 : 그렇죠. 이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영월이라는 곳, 청룡포. 그 근처가 단종의 유배지 마지막 삶을 거기서 마감을 했잖아요. 그 의미가 더해지기 위해선 지금같이 약간 춥고 겨울 바람이 남아 있는 이때 가는 게 지금의 우리가 느끼기에는 단종의 그 깊은 외로움과 고뇌를 더 느낄 수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은 들어요. 이 곳이 단종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 심용환 : 어떻게 보면 러프하게 얘기하면 조선 최초의 국왕이 쫓겨난 유배지예요. 연산군이나 광해군 이런 분들은 어찌 됐건 정치를 못 해서 합의 하에 쫓겨난 거고, 단종은 정말 억울하잖아요. 삼촌의 욕망 때문에 그러다 보니까 굉장히 애매했던 거고, 또 그게 첫 유배이기 때문에 굉장히 멀리 보낸 거거든요. 강원도 쪽에 유배를 보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초창기 때니까 얘를 어디 보내냐 하다가 선택이 된 거기 때문에, 공교롭게도 강원도에 가게 된 거고요. 지금은 그곳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슬프게 느껴지는 참 복잡한 미학이 생긴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단종의 무덤은 훗날 장릉이 됐고요. 숙종 때 이르러서 다시 왕위주의를 회복하게 되잖아요. 한 2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단종을 복권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는 건데, 이 과정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 심용환 : 일단은 숙종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숙종 하면 굉장히 장희빈 이런 인현왕후 스캔들 왕으로 많이 유명한데요. 숙종이 조선 전기 때 역사적 아픔들, 성삼문 같은 사육신들도 복권하고, 이순신, 곽재우 같은 임진왜란의 영웅 같은 사람들도 그때 다 칭송을 하거든요. 그래서 단종에 대한 위상을 높였던 것도 숙종이고, 숙종이 조선왕조 한 300년간의 해묵은 여러 상처들을 다 치유해서 오늘날 우리들한테 이런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느껴보라고 하는 가교점이 됐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단종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숙종의 업적은 굉장히 크다고 할 수 있죠.

◆ 박귀빈 :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들의 공감을 얻게 된 게 이 시대까지도 단종의 서사 이야기가 울림을 주기 때문이고, 또 이번에 1,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것은 우리 소장님의 예상과 달리

◇ 심용환 : 너무 잘 돼서 대단하다 그거죠.

◆ 박귀빈 : 극 초반에 보셨기 때문에, 지금의 사람들에게 이 단종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 있다고 보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바라보시면 좋겠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심용환 : 아까 말씀드렸듯이 너무 제가 한 말에 신경 쓰지 마시고요. 기분 나빠하지 마시고요. 역사적 현실과 우리가 느끼는 현재적인 감정은 다릅니다.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지금은 우리가 개인화되어 있고, 민주주의 사회의 느낌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감수성이 있는 거고요. 과거에는 유교적 가치 또 국가적 가치 이런 게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남겨져 있는 기록이나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과 지금은 다르다는 거. 내가 역사 영화를 봤을 때 굉장히 즐겁게 누리는 것과 거꾸로 그게 역사 사실이 어땠는가를 너무 똑같다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고요. 다만 첫날 봤는데, 언론 시사회 때도 펑펑 울었던 분이 있어요. 바로 옆에 앉았던 기자가 막 펑펑 울더라고요. 그래서 언론 시사회 때 그런 일이 없거든요. 그 엄숙한 자리에. 그거 보면서 되게 신기하다 이랬는데, 그만큼 오늘 우리의 각박한 시대, 굉장히 개인화된 시대 속에서 모두가 단종처럼 내몰리고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애처럼 너 이렇게 똑바로 못해? 똑바로 못했으면 너는 제거돼도 돼’ 이런 시대적인 아픔.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외로움들이 영화에 투영이 많이 돼서 마지막에 느끼는 게 시신이 떠내려올 때 유해진이 그걸 안고 막 울면서 수습해 주잖아요. 그래서 완전한 영화적 허구인데도 저도 굉장히 마음이 촉촉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정신의 위로가 되는 작품이어서 너무 좋다 이런 생각도 같이 해보게 됩니다.

◆ 박귀빈 : 끝으로 하나 짚어주시죠. 이 영화에서 ‘야 이 부분은 고증 진짜 잘했다’

◇ 심용환 : 고증을 못했다는 걸 지적하는 건 정말 자신 있는데, 고정을 잘했다는 걸 지적하는 거는 진짜 쉽지 않죠. 왜냐하면 아직까지 우리나라 고증이라는 게 스토리가 맞냐, 틀리냐 위주로 가고요. 그 안에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건물을 하고 이런 것들은 되게 많이 작품만 아니라 거의 모든 작품들이 많이 부실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제가 장한준 감독이 직접 만나서 잔소리를 할 생각이고요.

◆ 박귀빈 : 청룡포. 고정 잘하지 않았어요?


◇ 심용환 : 잘했고,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전 뭐가 좋냐면 작품에서 고증이 맞냐, 틀리냐보다도 민중들의 이야기를 담았잖아요. 그전까지는 단종이 불쌍하다는 게 주인공이었고, 세조가 나쁘다 한명회가 나쁘다는 지배층의 서사에 우리가 반응했더라면 이번에는 그런 불쌍한 단종을 엄흥도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사랑했다는 포인트로 옮겨왔기 때문에, 거기서는 고증의 문제를 넘어서서 굉장히 중요한 영화적 가치가 있고,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거죠.

◆ 박귀빈 : 지금까지 심용환 역사엔 교육연구소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심용환 : 네 감사합니다.


YTN 이시은 (sieun080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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