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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달러 간다더니?"…유가 폭등 막은 '뜻밖의 브레이크' [한방이슈]

한방이슈 2026.09.09 오후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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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이 정점을 찍던 시기, 세계 원유가 오가는 길목,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습니다.

평시라면 하루 2,000만 배럴, 그중 원유만 1,500만 배럴이 지나던 바닷길입니다.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3분의 1이 이 좁은 해협 하나에 걸려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경고했습니다.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최악의 경우 2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의 재림을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재앙은 오지 않았습니다.

전쟁 초기 배럴당 80달러대에서 출발한 국제 유가는 4월 한때 118달러선까지 올랐다가 이내 진정됐습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올해 브렌트유 평균을 87달러로 보고 있습니다.

해상으로 오가는 원유의 3분의 1이 걸린 해협이 막혔는데, 실제 시장에서 사라진 공급은 14% 안팎,

그런데도 유가는 사상 최고치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사라진 '오일쇼크'

물론 여러 완충 장치가 동시에 작동했습니다.

비축유가 풀렸고 산유국들은 우회로를 총동원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러 손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뜻밖이었던 손은 따로 있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 바로 중국입니다.

시장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왔습니다.

"중국이 새로운 OPEC이다"

상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호르무즈가 막히자 걸프 지역엔 갈 곳 잃은 원유가 쌓였습니다.

사우디와 UAE는 해협을 우회하는 송유관을 총동원했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나라들은 국제에너지기구가 조율한 대규모 비축유를 풀었습니다.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들의 증산도 빈자리를 메웠습니다.

프랑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은 바로 여러 완충 장치가 겹쳐 1973년 같은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여러 완충 장치 가운데 가장 큰 몫을 감당한 건 분명 중국이었습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중국은 전쟁 국면에서 원유 수입을 급격히 줄였습니다.

중국 세관 자료 기준으로 2분기 원유 수입은 하루 810만 배럴,

직전 분기보다 32% 급감해 2016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6월 한 달만 놓고 보면 1년 전보다 40% 넘게 줄었습니다.

규모로 따져보면 전 세계 원유 수입 감소분의 약 74%를 중국 홀로 담당한 셈입니다.

"시장이 넉 달째 놀라울 만큼 잠잠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고 JP모건이 분석한 이유입니다.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는 중국이 자국 경제에 필요한 물량을 상당히 정확히 계산해,

성장에 큰 타격 없이 수입만 줄였다고 분석했습니다.

경제가 주저앉아서 안 산 게 아니라 멀쩡히 굴러가면서도 필요할 때 석유 수요를 스위치처럼 껐다는 겁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중국은 세 가지 지렛대를 썼습니다.
 
 
중국의 세 가지 지렛대

첫째, 거대한 국가 비축유입니다.

중국은 전쟁 전, 상업용과 전략 비축을 합쳐 대략 14억 배럴 규모의 원유를 쌓아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오기 어려운 규모입니다.

유가가 저렴할 때 재고를 미리 채워둔 겁니다.

둘째, 수출 통제입니다.

중국은 세계 2위의 정유 강국입니다.

평소엔 아시아 이웃 나라들에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를 대량으로 팔았습니다.

그런데 전쟁 국면에서 정부가 석유제품 수출을 조였습니다.

밖으로 나갈 기름을 안으로 돌린 겁니다.

그만큼 새로 수입할 원유를 아낄 수 있었습니다.

셋째, 가장 놀라운 부분입니다.

국내 수요 자체를 눌렀습니다.

핵심은 전기차입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 집계로 올 상반기 중국의 신에너지차 판매는 1년 전보다 7% 넘게 늘어 740만 대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OPEC 자료 기준 중국의 휘발유 수요는 13%, 경유 수요는 17% 줄었습니다.

비축유, 수출 통제, 그리고 전기화로 다져진 수요 억제,

이 세 개가 겹치면서 전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중국의 그림이 완성된 겁니다.
 
 
왜 하필 '중국만' 가능한가

그렇다면 왜 다른 나라는 못 하고 중국만 가능했을까요?

원래 석유를 '사는 쪽'은 유가를 낮추기가 어렵습니다.

파는 쪽은 OPEC처럼 몇몇 나라로 뭉쳐 있지만 사는 쪽은 수많은 기업과 소비자로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분석가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OPEC이 오랫동안 '스윙 프로듀서', 즉 생산량을 조절하는 스윙 플레이어였다면 이번 위기는 처음으로 '스윙 바이어', 수요를 조절하는 큰손을 드러냈다고 말입니다.

그 스윙 바이어가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이 예외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국가의 통제력이 압도적으로 강합니다.

중앙이 방향을 정하면 국영 정유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따릅니다.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협상이 아니라 지시가 세계 유가를 흔든 셈입니다.

다만 여기엔 중국의 수입 감소는 유가를 겨냥한 '전략'이 아니라 전기차 전환과 재고 소진이라는 자국 정책의 '의도된 부산물'에 가깝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중국이 일부러 세계 유가를 누른 게 아니라 자국 사정을 챙기다 보니 결과적으로 유가를 눌러준 쪽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중국이 세계 유가를 눌렀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가를 노린 '전략'인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부산물'인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이 차이가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만능은 아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중국이 무적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먼저, 규모를 냉정히 봐야 합니다.

프랑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비교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에 원유 시장에서 사라진 공급은 14%, 그런데 유가 상승은 30%에 그쳤습니다.

반면 1973년 오일쇼크는 공급 7%가 끊겼는데 유가가 130% 넘게 폭등했습니다.

1973년보다 공급은 두 배나 사라졌는데도 유가 충격은 오히려 4분의 1에 그친 셈입니다.

중국이 그만큼 방파제 역할을 했다는 뜻이자 동시에 그 방파제가 없었다면 어땠을지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더 중요한 건 지속력입니다.

중국의 재고는 생각보다 훨씬 많았지만 무한하지는 않습니다.

비축유를 꺼내 쓰는 방식은 몇 년이 아니라 몇 개월 단위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여러 투자은행은 재고가 바닥을 향할수록 결국 시장이 더 높은 유가를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진짜 OPEC과 갈립니다.

OPEC은 원칙적으로 수년간 감산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하루 수백만 배럴씩 수입을 줄이는 상황을 영원히 버틸 수 없습니다.

중국은 '새로운 OPEC'이 맞지만, 지구력은 다른 OPEC입니다.

단거리는 압도적으로 빠르지만 장거리 마라톤은 뛸 수 없는 선수인 셈입니다.
 
 
 

이번 전쟁은 하나의 질문을 남겼습니다.

지난 반세기, 석유의 권력은 언제나 '파는 쪽'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세계 유가를 떠받친 여러 손 가운데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최대 소비국 중국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은 양날의 칼입니다.

호르무즈가 다시 열리고 중국이 빈 창고를 되채우기 시작하면 지금껏 유가를 눌러온 바로 그 힘이 이번엔 유가를 밀어 올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모습은 석유 권력이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넘어가는 신호탄일까요?

아니면 전쟁이라는 특수한 국면이 만들어낸 일회성 사건에 그칠까요?

아직 누구도 답하지 못합니다.

중국 자신조차 지금의 힘을 유가를 겨냥한 무기로 쥔 것인지 아니면 자국 사정을 챙기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것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분명한 변화가 하나 있습니다.


유가의 향방을 묻는 시선이 사막의 산유국이 아니라 베이징을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기획·구성 : 김재형(jhkim03@ytn.co.kr)
제작 : 이형근(yihan3054@ytn.co.kr)
참고 기사 : 이코노미스트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YTN digital 이형근 (yihan305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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