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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리영희 선생이 구한 경판, 90대 미군의 '양심'으로 돌아오다

와이파일 2019.03.26 오후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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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리영희 선생이 구한 경판, 90대 미군의 '양심'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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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신흥사에 있던 경판 한 점이 미국으로 반출된 지 65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 선생이 땔감이 될 뻔한 위기에서 구했던 경판이라고 하는데요.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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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리영희 선생이 구한 경판, 90대 미군의 '양심'으로 돌아오다

(▲ 신흥사 경판 '제반문' 목판 앞뒷면)

이 경판은 미국 해병대 중위였던 리차드 B. 락웰 (Richard B. Rockwell) 씨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락웰 씨는 속초에 주둔하던 1954년 10월, 수색정찰 임무 중 전쟁으로 파괴된 신흥사에 들렀다가 이 경판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경판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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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리영희 선생이 구한 경판, 90대 미군의 '양심'으로 돌아오다

락웰 씨는 경판을 그동안 집에 보관해왔습니다. 뒤늦게 이것이 중요한 역사자료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마땅히 돌려줄 방법을 찾기는 힘들었다고 합니다.

올해 92세인 락웰 씨는 지난해 1월, 자신이 직접 찍은 속초 사진 279점을 속초시립박물관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경판도 함께 돌려주고 싶다는 의사도 전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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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리영희 선생이 구한 경판, 90대 미군의 '양심'으로 돌아오다

(▲ 젊은 시절의 리차드 락웰, 사진 제공 : 리차드 락웰)

그리고 지난 18일, 능인사 주지 지상스님과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시애틀에 있는 락웰 씨의 집을 찾아가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경판을 돌려받았습니다.

락웰 씨는 "경판 반출에 대해 오랫동안 죄책감을 느껴왔고, 돌려주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법을 몰랐다"면서 "지금이라도 돌려줄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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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리영희 선생이 구한 경판, 90대 미군의 '양심'으로 돌아오다

(▲ 경판 반환 뒤 기념촬영 모습, 지상스님·리차드 락웰·안민석 의원)


이 경판은 17세기에 만들어진 '제반문(諸般文)' 경판으로 사찰에서 수행한 일상의 천도의식과 의례를 담고 있습니다. 원래 44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6.25를 겪으면서 대다수가 사라지고 14점만 남아있습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번에 돌아온 경판은 가장 마지막 장인 87장(앞면)과 88장(뒷면)인데 상태도 양호해서 가치가 높습니다.

그런데 이 경판에는 또다른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바로 故 리영희 선생이 청년 장교 시절, 잿더미가 될 위기에서 구해낸 사연인데요. 이야기는 락웰 씨가 경판을 발견했을 때보다 3년쯤 앞선 1951년, 6.25 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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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리영희 선생이 구한 경판, 90대 미군의 '양심'으로 돌아오다

(▲ 장교 시절 리영희 선생, 사진출처 : 리영희 평전 관련 YTN 화면)

잠시 리영희 선생이 1996년에 '법보신문'에 기고한 '신흥사 경판이 오늘 남아 있는 까닭'이라는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연대본부 지휘부에 앞서 도착한 본부 중대의 병사들이 몸을 녹이려고 절 안팎 여기저기에서 활활 불을 피우고 있었다. 불이 반가워서 짚차를 세우자마자 요란하게 타는 한쪽 불 둘레에서 서성대는 병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장작이나 나뭇가지로 불을 피운 줄 알았더니, 돌과 도끼 삽 같은 것으로 마구 빠개진 불경 목판의 더미가 타고 있지 않은가?

경판은 조각이 나고, 연방 불 속에 던져 넣어졌다. 나는 연대 전방지휘관인 부연대장에게 달려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귀중한 겨레의 문화재가 회진(灰塵)되고 있으니 즉시 불을 끄고 모든 경판을 회수하도록 명령을 내리게 했다. 타다 남은 경판은 조각까지 주워서 본당 좌측에 있는 판고에 차근차근 도로 꽂아놓도록 하였다"

- 리영희 <스핑크스의 코> 중에서

리영희 선생은 당시에 특별한 가치는 알지 못한 채, 무차별적 파괴를 막으려는 젊은 장교의 정의감에서 이렇게 행동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또 많은 장병들에게 38선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점령지'라는 의식이 앞서서 모든 것이 파괴와 노획의 대상처럼 비치는 것 같았다고도 덧붙이고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이 경판을 구할 당시 아직은 '성한 모습'이었던 신흥사,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미 해병대 중위 락웰 씨가 갔을 당시에는 이미 폐허로 변해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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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리영희 선생이 구한 경판, 90대 미군의 '양심'으로 돌아오다

(▲ 폐허로 변한 신흥사, 1954년 10월∼11월 리차드 락웰 촬영)

락웰 씨가 1954년에 촬영한 컬러 슬라이드 필름 사진 속에는 신흥사의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요.

또 신흥사 극락보전과 명부전 내부 사진을 보면 불상 뒤쪽의 불화가 모두 뜯겨나간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이 문화재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잘 알게 해주는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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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뜯겨져나간 신흥사 불화, 1954년 10월∼11월 리차드 락웰 촬영)

신흥사는 뒤늦게라도 '조건 없는 자진 반환' 형식으로 양심적 행동을 한 락웰 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습니다. 또 환수 업무를 추진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그의 결심이 '전쟁으로 인한 문화재 피해 원상회복' 문제에 대한 해법을 보여줬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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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리영희 선생이 구한 경판, 90대 미군의 '양심'으로 돌아오다

(▲ 폐허로 변한 신흥사, 1954년 10월∼11월 리차드 락웰 촬영)

전쟁통에 땔감이 될 뻔한 위기를 겪고, 폐허가 된 사찰에서도 살아남아 미국 땅에서 긴 세월을 보낸 경판은 이제 '고향' 신흥사 전시관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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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리영희 선생이 구한 경판, 90대 미군의 '양심'으로 돌아오다

(▲ 신흥사로 돌아온 경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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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리영희 선생이 구한 경판, 90대 미군의 '양심'으로 돌아오다

(▲ 설악산 신흥사, 사진출처 : 신흥사 홈페이지)

이지은 [je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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