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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할 자격, 우리에게 있을까?

와이파일 2019.09.02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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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할 자격, 우리에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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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13살 여자아이였습니다. 한창 예쁜 것만 봐도 흘러가는 시간조차 아까운 나이에 공장으로 끌려갔습니다. 한방에서 같이 자던 친구는 어느 날 얼굴이 퍼렇게 식은 채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몸을 흔들었지만 기척도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어딘가로 데려갔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지금까지 알지 못합니다. 왜 그랬는지 말해주는 어른은 없었습니다. 아이가 홀로 내린 답은 이랬습니다. '꿈을 꿀 때 혼이 멀리 가버리면 다시 못 돌아오는구나'. 아이는 이제 88살의 할머니가 됐습니다. 할머니는 지금도 얼굴을 가리고 잠들지 못합니다. 혹시라도 꿈에서 나간 혼이 얼굴을 못 찾아 돌아오지 못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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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할 자격, 우리에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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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할 자격, 우리에게 있을까?

1945년 태평양전쟁 막바지였습니다. 일본은 태평양 전선에서 연전연패했습니다. 전세는 이미 패배를 예고하고 있었지만, 일제는 군수물자 조달에 열을 올렸습니다. 조선의 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강제동원했습니다. 13살이던 김용덕 할머니가 끌려간 것도 그때였습니다. 마을의 아이들은 광주광역시의 일제 군수공장으로 보내졌습니다. 사실상의 납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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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 강제동원 피해자 김용덕 할머니

사정없이 맞았습니다. 일 안 한다고 맞고, 얼른 안 나간다고 맞고, 줄 세워놓고 맞았습니다. 일본인의 존재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하루는 또래 친구들과 일하는데 멀리서 일본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김용덕 할머니는 주변 친구들에게 조심하라고, 나지막하게 "일본X 온다"라고 읊조렸습니다. 용케 그 말을 알아들은 일본 여자는 막대기를 움켜쥐었습니다. 그리곤 아이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습니다. 할머니는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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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홈페이지.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유족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힘쓰겠습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그런데 정부는 피해 보상금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피해 조사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피해자 본인의 진술이 명확하고, 같이 강제동원됐던 다른 할머니의 증언도 있는데 말입니다. 강제동원 피해를 조사하고 보상금을 지급하는 위원회가 2015년 종료돼, 권한이 없다는 게 담당 부서의 설명입니다. 부서 고위 관계자는 "추가 접수 기한을 놓쳐서 피해를 호소하는 분, 지원을 호소하는 분이 많이 찾아오고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 지원단이나 재단에서 추가로 조사할 수 있는 권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추가 피해자를 지원할 수 없다는 이 부서의 명칭은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지원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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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사 관련 권고사항 처리 등에 관한 규정

규정을 찾아봤습니다. 이 부서의 업무를 규정하는 법이 있습니다. '과거사 관련 권고사항 처리 등에 관한 규정'이라는 시행령인데요. 5조를 보면 '폐지ㆍ종료 위원회 업무의 후속 조치 지원에 필요한 업무'를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이 수행하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후속 조치'에 '추가 피해 조사'를 포함하면 정부는 피해 신청을 못 한 어르신들의 피해 조사를 직권으로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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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지원과의 '주요 업무'에는 '피해진상조사연구'가 적혀 있다

실제로 이 부서는 '피해 조사'를 한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쓰여 있는 '주요 업무'를 보면 '일제강제동원 관련 피해진상조사연구'라고 적혀 있는 건데요. 밑에 적힌 설명을 보면 '강제동원 관련 정책 및 사건 등의 피해 사실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피해 사실을 규명하는 조사'를 한다고 홍보하는데 '추가' 피해 사실을 규명하는 조사는 하지 않는 '강제동원피해지원과', 아이러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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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덕 할머니와 같이 강제동원 됐던 최점덕 할머니

위로금 지급은 현행법으로 힘듭니다. 강제동원 특별법을 보면 27조에 '위로금을 지급받으려는 사람은 위원회에 지급을 신청하여야 한다', '위로금 지급 신청은 2014년 6월 30일 이내에 하여야 한다'라고 나와 있어서입니다. 2015년 위원회가 종료됐기 때문에 애초에 위로금 지급을 신청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정부 책임이 없는 거 아니냐고요? 2015년 12월 31일 위원회가 종료된 뒤 지금까지 3년 9개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이런 구멍이 있는 법을 고치기 위해 정부는 무슨 노력을 했을까요? 정부 입법을 통해 고칠 수도 있고, 국회 입법을 통해 바꿀 수도 있었겠죠. 정부 관계자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이 통과되면 위원회를 새로 꾸려 조사와 보상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법이 언제 통과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도 늦었는데 앞으로 더 얼마나 늦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권한이 없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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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동원이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한 '반일 종족주의'

강제동원 피해 조사를 멈춘 우리는 어쩌면 '반일 종족주의'라는 식민사관의 공동정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입법 미비를 핑계로 손을 놓은 사이, 반일 감정을 미개한 종족주의로 규정하는 식민사관이 자라났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강제동원이 허구가 아님을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건 수많은 피해자의 증언입니다. 빠짐없이 기록하고 데이터로 남기고, 수집된 자료를 연구자들에게 공개해야 합니다. 소극 행정을 개인 정보 보호로 포장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치밀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증거를 모으지 않으면 제국주의의 폭력을 근대화로 포장하는 궤변이 빈틈을 찾아 스며듭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대부분 숨졌고, 어린 시절 끌려간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이제 90살 전후입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증거입니다. 그들의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동오 기자 hdo86@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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