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하나회 척결 속전속결
취임한 지 불과 10여 일. 군부 출신을 포함한 3당 합당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하나회 척결을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김진영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국군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한 데 이어 군 실세인 안병호 수도방위사령관과 김형선 특전사령관을 해임했다. 모두 하나회 출신이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12·12 군사 반란과 하나회 연루 등으로 해임 또는 강제 전역되거나 전보된 장성만 무려 50여 명. 취임 첫해에 별 3개인 군단장급 장성 가운데 62%, 별 2개인 사단장급의 39%가 교체됐다. 영화 '서울의 봄' 흥행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고개를 드는 이유이다. 물론 하나회로 상징되는 군 개혁에만 한정되어 있다. 1997년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재앙을 오게 한 책임은 분명히 있다.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한 지 석 달 정도 지나 12·12 군사반란을 이렇게 규정했다. 하나회를 확실히 뿌리 뽑기 위한 대대적 군 인사 조치는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이뤄졌다. 하지만 군사 반란 책임자 처벌에 대한 의지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결국 피해자들이 나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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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뉴스 캡처
검찰, 12·12 가담자 전원 기소유예…'국민 혼란·국력 소모'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 등 21명은 12·12 반란 주동자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계엄사령관이던 정 전 총장은 반란 당시 보안사에 강제로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한 뒤 이등병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사건이 들어왔으니 검찰은 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994년 10월 29일에 나온 전두환·노태우 반란군 수뇌부에 대한 검찰의 판단은 기소유예. '죄는 인정되지만 처벌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검찰은 전두환 · 노태우 등 34명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고 4명에 대해서는 공소권이 없다고 결정했다. 당시 검찰이 밝힌 기소유예 처분 이유는 크게 3가지.
① 피해자들이 통치 기간에 국가 발전에 기여했고 대통령 선거와 5공 청문회를 통해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②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 단죄하면 재임 기간에 만들어진 기존 질서에 대해서 국민이 혼란을 느낄 우려가 있다.
③ 재판에 넘기면 지나간 일에 대한 논쟁으로 국론 분열과 대립이 재현돼 국력이 소모된다.
수사를 이끌었던 조준웅 당시 서울지검 1차장은 이렇게 부연했다.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후세에 맡기고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이번 검찰의 결정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또 내란죄에 대해 무혐의 처리하면서 이런 설명도 했다. "당시에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헌법 기관이 그대로 유지되었으므로 국헌 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검찰은 헌법 질서를 문란 시키거나 정권의 창탈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1979년 12월 12일 이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전두환·노태우 등 군사 반란 주동자들의 논리와 매우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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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정승화, 우 장태완 ⓒ연합뉴스
피해자들 반발…"반란 다시 안 일어난다고 볼 수 있나?"
이는 자연스럽게 피해 당사자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이들은 '불법이지만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특히 불법적인 군사 반란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이뤄지지 않으면 반란이 다시 안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와 같은 군사 반란을 일으키고 전군까지 장악해서 국민들을 지금까지 속여온 사람들을 국민들이 용서하는 게 옳겠어요?" -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
"고소 결과가 이렇게 나올 때 다시 반란이란 것은 우리가 안 일어난다고 볼 수 없다." -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
검찰이 12·12 반란 주동자들을 기소유예하면서 밝혔던 주된 '논거'는 '국가 발전 기여'와 '국민 혼란' '국력 소모'. 모두 비사법적 잣대인 셈이다. 수사기관에서 그것도 공개적으로 댈 만한 논거나 이유가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일종의 '사면 행위'처럼 비추어질 수 있다. 정승화·장태완 등 고소인들은 '반란 주동자들을 일단 법원에 넘겨 합당한 판결을 받게 한 후 국민화합 차원에서 대통령이 사면을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까지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기소유예로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건 검찰의 역할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군사 반란을 처벌하면 국민 혼란을 야기하고 이렇게 되면 결국 국력 소모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은 수사기관인 검찰이 하는 게 아니라 국민 동의를 얻어 국가 최고 통치자가 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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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재단
검찰, 5·18 관련도 '공소권 없음'…'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12·12 군사 반란 이듬해 일어난 5·17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검찰의 판단도 매우 유사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 기자회견까지 열어 광주의 비극을 해외에 적극 알렸고 취임 전까지 5·18 묘역을 여러 차례 다녀갈 정도로 관심이 컸다. 이런데도 취임 이후 반란 책임자 처벌 의지는 강하지 않았다.
1994년 5월, 6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소·고발해 어렵게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1년을 훌쩍 넘긴 이듬해 7월에 나온 검찰의 판단은 '공소권 없음'.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지검 공안1부는 전두환·노태우 등 피의자 58명 모두에게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검찰 발표문에 이런 내용이 담겼다. "정치적 변혁의 주도 세력이 새로운 정권 창출에 성공하여 새로운 헌정 질서를 수립한 경우 법적 효력을 다투거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사법심사가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학계에서 유력하다. 따라서 형식 판단 우선 법리에 따라 전원 공소권 없음 결정을 했다." 이때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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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비자금 사건으로 반전…결국 특별법으로 전두환·노태우 구속
돌파구가 마련된 건 결국 '검은돈' 때문이었다. 1995년 10월,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은 '노태우 비자금' 내역을 공개했다. 이 일로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소환되고 결국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반전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전까지 책임자 처벌에 부정적이었던 이유는 TK 지역에서 반(反) YS 정서가 힘을 받으면서 5·6공 세력이 정치 세력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자금 사건 이후 여론의 힘을 받게 된 김 전 대통령은 12·12와 5·18 관련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다. 이렇게 하니 검찰이 다시 움직였고 특별수사본부까지 설치했다. 수사 결과 전두환·노태우 반란 수뇌부는 내란·반란 혐의로 결국 법정에 서게 됐다.
1심에서 전두환 '사형', 노태우 '징역 22년 6개월'. 다른 관련자들도 징역 4년에서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단 한 명에게만 무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전두환 '무기 징역', 노태우 '징역 17년' 등 관련자 모두의 형량이 줄었다. 그리고 이대로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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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단 8개월 뒤 모든 죄를 씻어주다…사과 없었던 전두환
그리고 8개월 뒤 관련자 전원에 대한 사면이 이뤄진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때이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요청을 받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특별사면 형식을 취했다. 김영삼 정부가 내세웠던 명분은 '국민 대통합'과 '경제 난국 극복'. 검찰이 애초 처벌 불가 결정 때 내세웠던 논리도, 대통령의 사면 때 내세운 논리도 결국 '국민 통합'이었다.
안양교도소에 있던 전두환 씨는 검은 코트를 입고 교도소를 나서면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최근의 경제 대란으로 국민 여러분이 얼마나 놀라고 불안해할 것인지 걱정이 많습니다. 피땀 흘려 이룩한 경제가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본인은 80년 9월에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당시는 경제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나라가 어지러워 도탄에 빠져 있었지만 우리 국민은 이를 극복하고 세계가 놀란 선진 국가를 이룩했습니다."
죄를 뉘우치는 모습은 찾을 수 없고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자신의 치적을 앞세웠다. 그리고 이런 말도 남겼다. "교도소 생활이라는 게,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그것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는 2021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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