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슬기로운 라디오생활>과 ‘상이군경회’가 함께하는 기획 시리즈, ‘인빅터스 인빛터스’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순간에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고 일상의 큰 변화를 맞이해야 했던 두 분을 모셨습니다. 치열한 재활과 훈련 끝에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세계 상이군인들의 스포츠 축제죠? ‘인빅터스 게임’ 무대에 올랐던 분들입니다. ‘대회 최고령 참가자’로 전 세계 박수를 받은 김윤근 선수, ‘양팔 의수의 한계를 딛고 사이클 금메달’을 목에 건 나형윤 선수 두 분 오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김윤근, ■ 나형윤 : 예. 안녕하세요.
◆ 박귀빈 : 어서 오십시오. 두 분이 오셨기 때문에 각자 한 분씩 자기소개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김윤근 선수부터 해 주실까요?
□ 김윤근 : 저는 베트남 참전에서 부상을 입고 체육 재활을 하고 있는 상이군경 김윤근입니다.
◆ 박귀빈 : 어서 오십시오. 김윤근 선생님 오셨고요. ‘2022년 헤이그 인빅터스 게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 주장을 최초로 맡으셨습니다.
□ 김윤근 : 그런 국제 무대에 섰던 경험과 ‘인빅터스’라는 슬로건이 저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요. 최초 주장 맡으셨던 김윤근 선수 모셨고요. 예, 소개 부탁드립니다.
■ 나형윤 : 안녕하십니까. 저는 군 복무 중에 감전 사고로 양팔을 절단하고 운동으로 다시 재활을 해서 인빅터스 게임의 사이클 종목으로 출전한 나형윤입니다. ‘22년 헤이그 대회’에는 대한민국 첫 대표 선수로 출전을 하였고, ‘25년도 캐나다 인빅터스 게임’에 ‘동계’와 ‘하이브리드 종목’으로 참가하였습니다. 오늘은 결과보다 어떻게 도전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 삶의 변화가 어떻게 됐는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박귀빈 : 어서 오십시오. 우리 나형윤 선수님은 양팔을 잃었다고 하셨는데 지금 그러면 의수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 나형윤 : 예. 양팔이 없습니다.
◆ 박귀빈 : 그렇군요. 지금
로 오시면요. 청취자 여러분 ‘보이는 라디오’로 시청을 하실 수 있거든요. 우리 두 분을 화면으로 만나실 수 있는데요. 화면으로도 함께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참가했던 인빅터스 게임이 ‘2022년 네덜란드 게임’이군요. 두 분 모두 그 역사적인 대회에 첫 출전하셨던 분들인 거고. 첫 인빅터스 국가대표로 선발되신 데다가 더군다나 우리 김윤근 선수님은 대표팀 주장. 그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 김윤근 : 한마디로 얘기해서 감격스러웠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인빅터스 게임에 참여한다는 데 큰 의의를 가졌고, ‘제가 잘해야 후배들도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그런 염려도 많이 됐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는 열심히 하고 세계 상이군인들과 어울려 가지고 멋진 승부를 펼치고 왔습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깐요. 2022년도에 네덜란드 헤이그 인빅터스 게임에 두 분 다 출전을 하셨고, 김윤근 선수님은 대표팀 주장이 되신 건데. 제가 앞서 어떻게 소개를 드렸냐면 ‘대회 최고령 참가자’라고 제가 소개를 드렸거든요? 전혀 최고령 같지 않으신데 어떻게 최고령 참가자 하셨어요?
□ 김윤근 : 사실은 제가 제일 나이가 많습니다.
◆ 박귀빈 : 전혀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
□ 김윤근 : 세계 상이군경 중에서도 제일 나이가 많은 상태로 출전을 했는데. 동료들이 다 전쟁에서 다치고 이랬으니까 서로 마음이... 말은 안 통해도 다 통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고. 그래서 하여튼 많은 위로를 받고 왔습니다.
◆ 박귀빈 : 제가 그러면 여쭤봐도 돼요? 2022년에 참가하셨을 때, 최고령이셨을 때의 그때 나이 연령이 어떻게 되셨었어요?
□ 김윤근 : 73입니다.
◆ 박귀빈 : 4년 전에 73세셨다고요? 어머나 저 두 번 놀랐습니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이십니다. 굉장히 젊어 보이시는데요. 그렇지 않나요?
■ 나형윤 : 네, 맞습니다.
◆ 박귀빈 : 두 분 별로 나이 차이 안 나 보이시는데요. 우리 김윤근 선생님의 목소리 들어봤고, 나형윤 선수님도 당시에 처음으로 국가대표 되셔가지고 출전했을 때 기분 어떠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 나형윤 : 네, 저도 처음 대표에 선발됐다고 들었을 때 믿기지가 않았고. 대한민국이 처음 참가하는 대회였기 때문에 너무나도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부담도 엄청 되었고요. 저 개인의 출전이 아니라 우리나라 상이군경들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무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꼭 참가해서 저한테 ‘단순한 국제 대회가 아닌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큰 첫 걸음’이라는 의미를 갖고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 박귀빈 : 두 분 다 굉장히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다녀오셨다는 게 너무 느껴지고. 그리고 두 분 다 블랙 의상을 입고 오시긴 했는데, 우리 김윤근 선수님은 가슴에 ‘인빅터스 게임’이라고 써 있어요.
□ 김윤근 : 2022년도에 헤이그 인빅터스 게임에서 판매하는 유니폼을 산 겁니다.
◆ 박귀빈 : 거기서 유니폼을 파는군요. 왜냐하면 제가 쭉 보다 보니까 글씨가 보여가지고 한번 여쭤본 거예요. 지금도 자주 입으시나 봐요.
□ 김윤근 : 예. 요즘도 자전거를 타면서 많이 입고 다닙니다.
◆ 박귀빈 : 이거는 아무나 못 입는 건가요? 아니면 그때 거기에 대회 보러 가신 분들도 사서 입으실 수 있는 거예요?
□ 김윤근 : 사서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 박귀빈 : 사서 입을 수 있구나. 혹시 선수분들만 입으실 수 있는 어떤 유니폼 같은 것도 있나요?
□ 김윤근 :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유니폼은 따로 있습니다.
◆ 박귀빈 : 아, 그래요?
□ 김윤근 : 자전거를 타니까 자전거에 탈 적당한 유니폼을 만들어 맞춰가지고. 지금 집에서 나와 외출할 때 자주 입습니다.
◆ 박귀빈 : 그런데 이게 지금 반소매여서, 그러면 겨울에는 입으실 거 있으세요?
□ 김윤근 : 겨울에는 안에다 입어야 합니다.
◆ 박귀빈 : 사시사철 입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얼마나 의미 있는 대회였나가 느껴지고, 당시 최고령 선수셔서 당시에도 대회에서 화제가 됐었나 봐요?
□ 김윤근 : 예. 저를 그래도 나이가 많다고 외국 선수들이 감싸주고, 모든 거를 그냥 서로 도와주면서 시합도 같이 하고. 저 나름대로 젊은 선수들이랑 경기를 임하니까 나름대로 좋았고요. 그 사람들은 또 저로 인해서 뭔가 ‘앞으로 자신들도 충분히 늦게까지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신념을 주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 박귀빈 : 제가 다시 느끼는 거지만 너무 젊으십니다. 어쩌면 해외 선수들이 최고령이신 거 몰랐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때 유명 인사셨네요.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최고령 나이로 참여를 하셨기 때문에 더 특별한... 우리 선수님께도 특별했고 다른 같이 참가한 선수들에게도 굉장히 특별한 분이 되셨을 것 같아요.
□ 김윤근 : 그리고 제가 선수 대표니까. 주장이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많은 메달을 따왔습니다. 실적이 좋았어요. 첫 출전해서 금메달도.
◆ 박귀빈 : 내 덕이다?
□ 김윤근 : 제 덕이 아니라 마음을 합쳐서 열심히 했어요.
◆ 박귀빈 : 그러니까요. 맞습니다.
□ 김윤근 : 나형준 선수도 금메달을 땄고, 양궁에도 땄고 이런 식으로 해서 메달을 많이 땄습니다. 사이클에서도 은메달도 따고, 동메달 따고.
◆ 박귀빈 : 그런 것 같아요. 첫 출전이었잖아요. 나형윤 선수님은 말씀하셨듯이 첫 출전에 메달 따셨는데 ‘금메달’이었습니다. 세계 정상이었습니다. 금메달 예상하고 가셨어요?
■ 나형윤 : 아니요. 전혀 예상은 못했고요.
◆ 박귀빈 : 다들 그러시더라고요. 솔직히 예상하셨잖아요.
■ 나형윤 : 전혀 못했습니다. 운도 따랐던 것 같고 그리고 주위에서 응원을 많이 해주셨기 때문에 그에 보답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탔는데, 결과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그럼 금메달 따고 기분 진짜 어떠셔요? 저 진짜 궁금해요. 메달 따시면 기분 어떠실까요?
■ 나형윤 : 사이클로는 국제대회는 그 무대가 처음이었거든요. 그 대회에서 어찌 됐든 우리나라가 처음 참가하는 대회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과 감동이었던 것 같아요.
◆ 박귀빈 : 대단하신 게 사이클에서 다른 나라들 많잖아요? 이전 대회에서 금메달 딴 나라들도 있을 거 아니에요. 한국이 처음 출전했는데 ‘처음 출전한 한국에서 사이클 금메달’ 나온 거예요. 다른 나라에서도 깜짝 놀랐을 것 같아요.
□ 김윤근 : 정말 축제였습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요. 물론 선의의 경쟁이지만 선수들끼리 경쟁 심리 막 이런 거 있잖아요? 인빅터스 게임은 그것 말고도 서로 ‘공감대’도 굉장하다고 들었단 말이에요. ‘유대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견제했을 것 같다. ‘아니 대한민국을 왜 이렇게 잘해?’ 이렇게 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더군다나 우리 나 선수님은 양팔에 의수를 하고 계시잖아요. 그럼 당시에 경기하실 때는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 나형윤 : 양팔이 전자의수인데, 이 의수를 착용하고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손으로 브레이크나 기어 변속을 하지 못하다 보니까 페달링을 하면서 다리로 기어 변속하고 브레이크를 잡을 수 있게 개조를 해서 그렇게 자전거를 탔습니다.
◆ 박귀빈 : 그런데 사실 자전거 많이 타시는 분들도 알겠지만 저는 잘 이해는 안 가거든요? 손으로 브레이크를 안 잡고 이렇게... 그럼 다리로 다 하셨다고 하잖아요? 물론 자전거를 개조를 했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많은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 나형윤 : 네. 자전거를 타는 기간 동안 브레이크 감 익히는 걸 적응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매번 그 감이 틀렸고, 그다음에 팔이 의수다 보니까 회전 반경도 제한돼서 그 부분도 문제가 됐었고. 의수가 전자의수다 보니까 땀하고 물에 엄청 약해요. 그리고 사이클은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이다 보니까 그런 오류라든지 작동에 문제가 생기는 걸 대비해야 됐기 때문에 항상 페달링에만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 박귀빈 : 그렇죠. 너무 힘드셨겠는데요. 훈련 과정도 그렇고 경기할 때도 되게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사이클 선수들마다 조금 장애의 종류가 다르지 않나요? 혹시 그렇다면 사이클 선수 중에서 갖고 있는 장애 중에 사이클을 하는 데에 더 어려운 그런 조건은 아니셨던가요?
■ 나형윤 : 저보다도 더 중증인 장애인들이 계셨기 때문에, 저도 어려웠지만 제가 제일 힘들다 이거는 말씀드리기가 조금...
◆ 박귀빈 : 네. 확실히 인빅터스 게임에 출전을 하셨던 분들, 우리 상이군경회에서 훈련을 하시는 분들 보면 항상 ‘다른 선수들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제가 대화를 하면 꼭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인빅터스 게임’이라는 게 더 많이 관심이 가고, 이 대회에 대해서 알고 싶고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 청취자분들도 같은 느낌을 가져보시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두 분 모두 군 복무, 참전의 과정을 거치면서 크게 부상을 입으신 거거든요. 그리고 부상 이후에 어쨌든 삶이 굉장히 많이 달라지셨을 거예요. 그런데 운동을 시작하면서 삶의 방향이 달라지고, 변화를 하신 거고 도전을 하신 건데. 처음에 ‘마음먹게 된 계기’가 너무 궁금합니다.
□ 김윤근 : 베트남 참전해서 지뢰 폭발로 두 다리를 잃게 됐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그런 걱정도 많이 했지만, 가정을 이루다 보니까 ‘운동도 해서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게 살자’ 하는 슬로건으로 하다 보니까요. 처음에는 사이클을 안 했습니다.
◆ 박귀빈 : 건강해지려고 운동하신 거네요.
□ 김윤근 : 예. 다른 운동을 하다가 사이클을 접하게 돼서 사이클을 하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지금도 한 60~70km씩 하루에 타고 있어요. 사실은 이런 장애를 가졌잖아요? 다쳐서 장애를 가졌지만 가만히 있으면 살기 너무나 힘들어요. 운동을 해서 스트레스도 날리고, 자기 건강도 챙기고 그런 위주로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좋은 재활 훈련이고 좋아요.
◆ 박귀빈 : 처음엔 다른 운동 하셨어요?
□ 김윤근 : ‘론볼(Lawn bowls)’이라고 있습니다. 론볼. 아실지 모르겠네요.
◆ 박귀빈 : 잘 모르겠는데요.
□ 김윤근 : 잘 모르시죠? 천연 잔디에서 20m의 조그마한 잭을 가운데다가 던져놓고. 그게 폭이 한 5m 돼요. 거기서 굴려가지고 큰 공이 4개인데 거기 가까이 가는 게 점수예요.
◆ 박귀빈 : 아,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그걸 하시다가 핸드사이클로 바꾸신 거예요?
□ 김윤근 : 우연히 수원에서 체육관에 핸드사이클이 있는 걸 보고 한번 올라가서 해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거는 내 운동이다. 내 적성에 맞는 거 만났다’ 이렇게 해가지고선 사이클로 완전히 전향을 했습니다. 사이클을 하면서 일반 여러분들하고도 어울리고 싶어서 ‘마라톤’도 했어요. 제가 휠체어로 풀코스 세 번 다 하고, 조중동 다 하고 하프도 다섯 번을 했어요. 첫 번에 춘천대회 풀 코스를 했는데 4시간 30분 걸렸어요.
◆ 박귀빈 : 정말 대단하다. 그럼 너무 팔이 아프실 것 같은데요.
□ 김윤근 : 아프죠. 아픈데 그래도 가족들의 도움도 있고, 응원도 있고, 아무리 내가 장애를 입었어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하니까 충분히 되더라고요.
◆ 박귀빈 : 제 생각에는 비장애인들도 하기 쉽지 않은 것들을 다 도전해서 이뤄내신 거거든요.
□ 김윤근 : 제 자신이 도전하는 걸 좋아합니다.
◆ 박귀빈 : 도전하는 거 너무 좋아하시는 것 같고, 그래서 그것이 표정과 우리 선수님의 분위기에 다 고스란히 느껴지고. 선생님께 오히려 제가 더 힘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나형윤 선생님도 굉장히 존경하는 선배님이 아니실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 나형윤 : 엄청 존경하는 선배님이세요. 저희 아버님보다도 연세가 많으신데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계시고. 멋지십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요. 우리 나 선수님 이야기를 한번 해 볼게요. 나 선수님은 군대에서 아까 감전 때문에 두 팔을 잃었다고 하셨는데, 굉장히 젊은 나이, 그 당시에 어떻게 운동을 해야 되겠다 마음먹으셨고 어떻게 이렇게 선수까지 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 나형윤 : 처음에 감전 사고를 당했을 당시에 팔을 절단하고 사회하고는 완전히 단절됐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은둔 생활을 한 1년 넘게 조금 폐인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살아 있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밖으로 나와서 사회 활동도 하고 하다가 지인을 통해서 운동을 접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장애인 태권도를 접하고 거기서 사이클로 전향을 했고, 지금까지도 대부분 동적인 운동들을 지금까지 해 오게 된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그렇군요. 정말 두 분 다 대단하신데, 두 분 모두 그래서 헤이그에서 있었던 인빅터스 게임에 함께 출전을 하셨고. 우리 나 선수님은 금메달도 따셨고. 그 대회에 참가를 하기 전과 후가 많이 달랐는지 한번 여쭤볼게요. 어떠셨어요?
□ 김윤근 : 예, 인빅터스 게임을 참가하고 돌아와서 보니까 인빅터스 게임이라는 그 자체가 소중하고 뜻이 깊었어요. 그래서 와서 더 열심히 운동을 하고, 가만히 있으면 딴 생각만 들으니까 운동으로 모든 생각을 접고 하니까 본인 건강에도 좋고.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이 나이에 현재 서울시 대표 선수예요.
◆ 박귀빈 : 아니요, 충분히 대표 선수 하실 것 같아요. 자랑하셔도 돼요.
□ 김윤근 : 장애인 체전에 가서 은메달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올해도 해보려고 그러는데, 체전이 9월에 열리거든요? 그때 딸지 모르겠습니다.
◆ 박귀빈 : 여러분 응원해 주세요. 9월.
□ 김윤근 : ‘영원히 은메달’이라고 다들 그러고 있는데, 모르겠습니다.
◆ 박귀빈 : 그리고 우리 나 선수님은 어떠셨어요? 인빅터스 게임에 참가하고 나서 보니 뭐가 달라지던가요?
■ 나형윤 : 우선 참가 전에는 상이군인이라는 부분을 제가 남들 앞에 내세우지를 못했습니다. 참가한 이후에 다른 나라들이 그 장소에서 정말 국가 유공자라는 자체만으로 이렇게 예우와 대우를 받는다는 모습을 보고 아 나도 어쨌든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다쳤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이 생겨서, 그런 부분이 삶을 살아가는 데 조금 플러스가 되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로서도 그런 부분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맞아요. 네덜란드에서는 국가유공자를 얼마나 예우하는가를 직접 몸소 느끼시면서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하셨잖아요? 우리나라 많은 분들이 다 마음은 있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하고, 무엇을 통해서 그거를 함께 이렇게 공감해 줄 수 있는 그게 없었는데. 우리나라도 곧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짧게, 우리 김윤근 선생님이 전국 체전 말씀하셨잖아요? 우리 나 선수님도 자랑할 거 있으시잖아요. ‘사격’하신다면서요? 장애인 사격 종목에도 도전하신다면서요.
■ 나형윤 : 지금까지는 활동적이고 주위에서 접하기 쉬운 운동들을 대부분 했었는데, 현재는 사격을 배우고 있습니다. 배우는 단계다 보니까 사격의 절제미나 그다음에 인내하는 부분을 알게 되면서 너무 그 매력에 빠져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 박귀빈 : 매력 느끼셨어요? 다음에 사격에서 메달 나옵니다. 대단하네요. 두 분 다 꼭 따실 겁니다. 두 분 다 메달 꼭 따실 것 같고, ‘대전’이 ‘2029 인비터스 게임 유치 후보지’로 거론됐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인빅터스 게임 열린다? 그 의미 짧게 말씀해 주세요. 얼마나 좋은 겁니까?
□ 김윤근 : 열리면... 사실 제가 그때 29년도에 80이에요. 그래서 꼭 열리기를 바라는 사람인데, 그리고 이 인빅터스 게임이 열리면서 국가유공자에 대한, 상이군인에 대한 배려와 위상도 높아질 것 같고 그래서 꼭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고. 우리가 제일 힘든 거는 ‘사회에서 바라보는 눈’이 좀...
◆ 박귀빈 : 그러니까요.
□ 김윤근 : 새롭게 보지 말고 똑같이,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주는 게 바람’입니다.
◆ 박귀빈 : 두 분과 대화를 하면, 항상 우리 국가유공자분들이랑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굉장히 존경하는 마음으로 뵙게 되거든요. 많은 분들이 아마 그러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간이 한 1분 정도 남았습니다. 어떤 이유가 됐든 힘든 시기로 삶에 의욕을 잃으신 분들 많으실 거예요. 그중에는 분명히 장애라는 것이 원인이 되는 분들도 계실 것 같고, 그래서 인빅터스 정신 두 분 다 갖고 계시니까. 그 정신으로 우리 청취자분들게, 힘든 분들께 ‘응원의 메시지’ 짧게 한마디씩 부탁드릴게요. 우리 김 선생님부터.
□ 김윤근 : 사실 ‘전쟁 영웅’이라고 그러거든요? 상이군인 위상이 올라갔으면 좋겠고, 모든 것이... 운동이든 뭐든 편하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상이군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끔 되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박귀빈 : 네, 우리 나 선수님.
■ 나형윤 : ‘장애가 있다고 해서 가능성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고 생각을 하고. 저 또한 절망했던 시간들이 너무 많았는데, 미래의 내 삶을 변하기 위해서 장애든, 실패하셨던 분들이든 오늘 그 하나부터 조금 본인이 스스로 움직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요. 지금까지 <인빅터스 인빛터스> 제3화였습니다. 김윤근 선수, 나형윤 선수 두 분과 함께 했습니다. <인빅터스 인빛터스>는 국가보훈부와 대한민국 상이군경회가 함께 합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 김윤근, ■ 나형윤 : 감사합니다.